11월 3일 오후 2시. 이키츠키 카레마스 신사에서는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나가사키대교구장 다카미 미츠아키 대주교와 잠복 키리스탄, 불교 신자들의 합동미사가 봉헌된 것이다.
이날 미사에는 가톨릭 신자들과 잠복 키리스탄, 불교 신자 등 약 100여 명이 참여했으며 미사 후 치토시 노시타 신부(나가사키대교구)의 종교 간 대화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잠복 키리스탄’이란 일본교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특징으로, 숨은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14년 금교령을 내린 후, 심한 박해가 계속되자 일본 신자들은 250년간 숨어 지내며 ‘잠복기간’을 거쳤다. 이후 1865년 3월 17일, 나가사키 오우라성당에서 우라카미 신자들과 푸티잔 신부의 만남이 이뤄질 때까지 이들은 비밀교회를 만들어 신앙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실제로 이키츠키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잠복 키리스탄을 자처한 이들은 죽기 전 대세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했으며, 불교 신자의 집에서 400년 된 마리아상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교회는 놀라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불교 신자인 사람들의 조상도 오래 전 그리스도 공동체였으며, 잠복 키리스탄으로 신앙을 이어왔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60세 이상이며 불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법명과 세례명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이키츠키에는 가톨릭 신자, 잠복 키리스탄, 불교신자이면서도 세례명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매년 미사를 봉헌하고 식사를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많은 잠복 키리스탄들이 미사를 봉헌한 후 그 자리에서 가톨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들과 잠복 키리스탄들은 미사에서 꽃다발, 봉헌금과 함께 잠복 키리스탄의 전통에 따라 일본 술과 위패도 봉헌했다. 당시 잠복 키리스탄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숨기기 위해 위패를 놓고 참배하는 것처럼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미사 후 잠복 키리스탄의 기도(오라쇼)가 이어졌다. 묵주를 들고 카레마스 신사 앞에서 약 10분간 행한 기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본시오 빌라도, 아베 마리아, 산타 마리아 등 익숙한 단어들이 포함돼 있으며 기도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강연을 맡았던 노시타 신부는 “카레마스 신사는 오래 전 잠복 키리스탄들이 미사를 바치던 곳이라 돌문을 닫으면 십자가로 변한다”며 “잠복 키리스탄들과의 꾸준한 대화를 위해 크리스마스와 같은 때 그들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188위 순교자 시복 1주년 - 나가사키 성지 순례] 카레마스 신사에서 가톨릭-잠복 키리스탄-불교 신자 합동 미사
‘잠복 키리스탄’으로 살면서 400년 동안 신앙 굳게 지켜
1614년 금교령 후 박해 피해 믿음 지킨 신앙 선조 후예들
대부분 60세 이상 불교 신자 법명·세례명 함께 갖고 살아
발행일2009-11-22 [제2673호, 20면]
▲ 11월 3일 이키츠키섬의 카레마스 신사에서는 나가사키대교구장 다카미 미츠아키 대주교 주례로 가톨릭 신자와 잠복 키리스탄, 불교 신자들의 미사가 봉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