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를 잃은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만년필을 잡았다. 그렇게 한 획, 한 획 긋기를 꼬박 5년. 구약성경을 완필하고 신약성경은 사도신경까지 필사했다. 그런데 한글성경이 아니다. ‘영어’다.
송승정(벨라디노·70·산청 성심원 준본당 사무장)씨는 아직도 하루의 시작을 ‘성경필사’로 활짝 연다. 일흔의 나이에도 그의 다짐은 단 하루도 성경쓰기를 거르지 않게 했다.
“2004년 유치원 통학버스 사고로 외손녀(4)를 잃고 손녀에 대한 그리움을 삭히기 위해 ‘성경필사’를 시작했지요. 하루라도 안 쓰면 마음이 불편해서 안 돼.”
실제로 그가 가지고 있는 재속 프란치스코회 지침서를 펼쳐보면 ‘하늘나라에 간 우리 손녀 마리아를 위한 기도’와 손녀에게 쓰는 편지, 사진이 곱게 붙어있다.
2005년부터 송 씨가 필사한 영어성경은 구약만 매우 두꺼운 공책으로 9권, 신약은 2권으로 모두 11권이다. 중학교 때 배운 영어 실력으로 컴퓨터 사전을 검색해가며 필사한 것들이다.
“처음에는 모르는 단어를 찾으면서 세월을 다 보내는 거라. 컴퓨터도 처음엔 ‘이게 뭐하는기고’하면서 다른 본당 사무장에게 배웠다 아이가. 경상도 말이라 불안해 보여서 그렇지. 이제는 읽는 것은 좔좔, 어려운 영어책도 읽게 됐어요.”
구약성경을 완필한 공책 마지막 장을 펼치면 그동안 성경필사에 온 마음을 다한 그의 뿌듯함을 읽을 수 있는 듯하다. 정성들여 쓴 그의 말에는 빨간 밑줄도 그어져 있다.
“영어 구약성경 2009년 8월 24일 5시50분 완필함. 긴 세월이었다. 혹시 단어에 빠진 알파벳, 누락된 단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의가 아니다. 아마 쓰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일 게다.”
그는 아직도 새벽 4시 7분이면 정확하게 성당 사무실에 도착해 하루 일을 시작한다. 늦게 도착하면 ‘벼락’이 떨어질 것만 같다고 했다. 만년필을 꾹꾹 눌러 매일 한 시간씩 필사에 몰두한다.
“구약성경도 또 쓰고 있어요. 열 번이라도 써야지. 쓰고 나면 의무를 다한 것처럼 편하고, 잡념도 없어지고. 죽는 그날까지 하느님 말씀 베끼는 거라.”
손녀를 그리며 시작한 영어필사.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행복한 ‘영어 실력’을 선물했다. 할아버지는 이제 손녀에게 받은 선물로 영어회화에 도전한다.
“마리아야. 하늘나라에도 유치원이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 잘 사귀고 즐겁게 놀아라. 할아버지, 할머니는 후일 죽으면 마리아 옆으로 갈 것이다. 마리아야, 사무실에 오면서 이 글을 쓴다. 하늘나라에서 만날 때까지 즐겁게 살아라. 안녕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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