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경 천주교회로의 이승훈 선생 파견
1783년 가을, 이벽 성조께서는 몇 해 동안 수차에 걸친 시도와 노력 끝에 마침내 이승훈을 북경 천주교회로 파견하시며 거룩히 훈계하시니, 이승훈은 이를 듣고 스승의 말씀으로 마음에 새겨, 영세와 성서, 성물 구입 등 부여된 사명을 정성껏 완수하고 귀국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에 대한 프랑스인 역사가 샤를르 달레의 기록을 보자.
하느님께서는 그렇게도 열성으로 진리를 찾고 있던 이 정직한 영혼들의 뜨거운 소원이 실현되기를 마침내 허락하셨다. 그 해 1783년 겨울, 이동욱이 북경 조정에 가는 서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아들 승훈은 이벽 성조의 절친한 친구 중 하나였는데, 그가 아버지를 따라 그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벽 성조께서는 이승훈이 북경 사절단에 자기 아버지를 따라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였다. 즉시 그를 찾아갔는데, 그 시대의 문헌에 의하면 그가 승훈에게한, 주목할 만한 말은 다음과 같다. ‘자네가 북경에 가는 것은 참된 교리를 알라고 하늘이 우리에게 주시는 훌륭한 기횔세. 참 성인들의 교리와 만물의 창조주이신 천주를 공경하는 참다운 방식은 서양인들에게서 가장 높은 지경에 이르렀네. 그 도리가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것 없이는 자기 마음과 자기 성격을 바로잡지 못하네. 그것이 아니면 임금들과 백성들의 서로 다른 본분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것이 없으면 생활의 기초가 되는 규칙이 없네. 그것이 아니면 천지창조며 남북극 원리며 천체의 규칙적 운행을 우리는 알 수가 없네. 그리고 천사와 악신의 구별이며, 죄를 사하기 위한 천주성자의 강생이며, 성인은 천당에서 상을 받고 악인은 지옥에서 벌을 받는 것 등, 이 모든 것도 우리는 알 수가 없네.’ 종교서적을 아직 모르고 있던 이승훈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감탄하여 그 책을 몇 권 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벽 성조께서 가지고 있던 책들을 대강 읽어보고 나서 기쁨에 넘쳐, 자기로서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벽 성조께서는 대답하셨다. ‘자네가 북경에 가게 된 것은 천주께서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기사 구원코자 하시는 표적일세. 북경에 가거든 즉시 천주당을 찾아가서 서양인 선비들과 상의하며 모든 것을 물어 보고, 그들의 교리를 깊이 파고들어, 그 종교의 모든 예배행위를 자세히 알아보고, 필요한 서적들을 가져오게. 삶과 죽음의 큰 문제와 영원의 큰 문제가 자네 손에 달려 있으니, 가서 무엇보다도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게.’
이벽 성조의 이 말은 학문의 갈증보다도 종교의 갈증이 그에게 더욱 절실하였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의 마음을 준비한 것이니, 그에게는 구령대사가 점점 더 유일한 중대사가 되어 갔던 것이다. 그의 말은 이승훈의 마음 속 깊이 파고 들어갔다. 이승훈은 그것을 도사의 말씀처럼 받아들였고, 자기들의 공통된 소원의 실현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다. 이승훈은 드디어 1783년말 경에 북경을 향하여 떠났다. 그는 북경에 도착하여 북당을 찾아가 루이 드 그라몽 신부를 방문하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승훈은 열심히 천주교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미구에 성세를 받을 준비가 다 되었다. 귀국 길에 오르기 전에 성세성사를 받았는데, 그가 조선 천주교회의 주춧돌이 돼라는 희망으로 베드로란 세례명을 받았다.
▨ 신앙피정과 최초의 전교활동
갑진년(1784) 봄에 이승훈 베드로는, 북경에서 얻은 많은 책과 십자고상, 상본과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에게 제일 급한 것은 이벽 성조에게 자기 보물의 일부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벽 성조께서는 그동안 날을 새가며 사신들의 귀국을 몹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벽 성조께서는 친구가 보내준 많은 서적을 받자마자, 외딴 집을 세내어, 그 독서와 묵상에 전념하기 위하여 들어앉았다. 이제 그는 종교의 진리의 더 많은 증거와, 중국과 조선의 여러 가지 미신에 대한 더 철저한 반박과, 7성사의 해설과, 교리문답과 복음 성서의 주해와, 그날 그날의 성인행적과 기도서 등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을 가지고 그는 천주교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체적으로, 또 세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책을 읽어나가는 데 따라서 새로운 생명이 자기 마음속에 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은혜를 알려 주고자 하는 욕망도 커갔다. 얼마동안 연구한 뒤에 은둔처에서 나와, 이승훈과 정약전, 정약용 형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나라의 무수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가 그들에게 구속의 은혜에 참여케 하기를 원하시오. 이것은 천주의 명령이오. 우리는 천주의 부르심에 기를 막고 있을 수가 없소. 천주교를 전파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오.’ 그 무렵 북경에서 영세한 이승훈 베드로가 이 성사를 이벽 성조와 권일신에게 주었다. 본명 선택은 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벽 성조께서는 조선의 개종사업을 시작하여, 구세주가 오시는 것을 준비하였으므로, 본명을 요한으로 하였고, 권일신은 복음 전파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동양의 사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을 주보로 하여, 그를 모범으로 삼고 그를 보호자로 모시기로 하였다. 이벽 성조 자신은 곧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선 중인계급의 친구들 중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몇 사람에게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활기있고 박력있는 말을 듣고서 거의 즉시 응하였다. 그들 중에는 최창현, 최인길, 김종교가 있었다.
※ 자료출처 : 천진암성지 홈페이지(chonjina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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