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서한에 이어 최양업은 오두재(현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의 오도재 아랫마을 혹은 경북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의 오도재 아랫 마을로 추정)에서 두 통의 서한을 쓴다. 열다섯 번째 편지는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것이고, 다음 편지는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것이다.
이 서한에서 최양업은 슬픈 소식이라며 ‘매스트르 신부의 선종’을 알린다. 매스트르 신부는 최양업의 선생 신부로 조선 입국을 위해 7년간 고생했으며, 함께 조선신자들의 사목을 도왔던 인물이다. 선교사들의 죽음에 따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베르뇌 주교의 건강도 최양업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 오두재에서, 1858년 10월 3일
“우리는 베르뇌 주교님과 두 분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기쁨에 도취돼 페레올 주교님과 장수 양 신부님의 선종에 대한 슬픔을 너무 빨리 잊어버렸습니다. 작년에는 매스트르 신부님의 선종으로 또 다시 쓰라린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최양업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매스트르 신부의 선종을 알리며, 조선교회를 이끌어줄 목자인 베르뇌 주교의 건강도 매우 염려하고 있음을 밝힌다.
“만일 우리의 죄악을 기억하신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재난으로든지 벌하시더라도 다만 우리에게서 우리 목자만은 앗아가지 마시기를 빕니다.”
최양업은 이 서한에서 현재 조선이 ‘흉년’이 들어 물가가 크게 올랐으며, 서양 함선이 쳐들어와 조선을 전복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민심이 흉흉하다고 전한다. 또 이 가운데에는 아예 서양 함선이 들어와 조선을 개혁해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머지않은 장래에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리라고 예언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왔을 때 별다른 손해 없이 자기의 구원을 얻으리라고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 박해의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난관을 극복하며, 용맹하고 굳세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양업은 서한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한 사람들’에 대해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부자에서 가난뱅이가 된 김 베드로 ▲관장의 첩으로 다른 이와 사랑에 빠져 함께 쫓겨났지만 산골에서 신앙을 찾고 모범이 된 부부 ▲신앙을 방해하는 남편에게서 달아나 걸식으로 살아가는 여인 등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최양업은 당시 신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교리공부를 실천해야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 해에 예비 신자들이 상당히 많아서 400명이 넘었으나, 영세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교님께서 ‘사본문답’을 완전히 배우지 못한 자에게는 세례성사를 주지 말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중략) 사본문답을 전부 배우자면 몇 해가 걸려야 하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심지어 죽을 때까지 교리공부를 해도 사본문답을 다 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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