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피정의 집에서 소임을 맡을 때 일입니다.
피정의 집이 좀 오래 된 건물이라서, 큰 마음 먹고 겨우내 힘들게 공사를 했고, 많은 분들이 노력 봉사를 해 주셔서 그 해 봄, 아담한 모습으로 새 단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교님을 모시고 조촐하면서도 아름다운 축성식을 계획했습니다. 음식도 푸짐하게 장만했습니다. 축성식 전날, 분명 날씨도 좋았고, 일기 예보 역시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날까지 좋던 날씨는 어디가고, 아침부터 조짐이 좋지 않더니 급기야 축성식하는 시간에는 아예 비바람이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모든 것이 돌발 상황이었고, 모든 계획이 차질 투성이었습니다. 주교님은 마당을 둘러보실 겨를도 없이 곧장 성당으로 들어가셨고, 피정의 집 넓은 잔디 밭에서 국수 잔치를 할 예정이었는데, 그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힘든 공사 만큼이나 축성식 역시 힘들게 끝이 났습니다.
사실 마음속으로, 축성식 날 비만 오지 말게 해 달라고 주님께 빌고, 또 빌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기어이 비가 내리자, 함께 살고 있었던 할아버지 수사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원장이 지은 죄가 많아서, 이 좋은 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구먼!” 그렇게 축성식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뉴스를 보는데 봄 가뭄이 한창이어서 농부님들이 비를 애타게 그리던 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날 내린 비로 농사짓는데 많은 부분 해갈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뉴스 보도를 보면서, 문득 혼자 웃으면서 내가 죄를 좀 더 많이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자기 나름대로의 바람이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그 바람이나 희망이 잘 되지 않으면, 무척이나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나는 ‘좋은 날’을 원하는데, 그보다 더 ‘비’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내 바람보다 더 크고 간절한 바람을 누군가 가지고 있다는 것! 나의 바람이 더 간절한 바람 뒤에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주님의 뜻에 “예, 그렇게 하셔요!”라고 온전한 의탁의 마음으로 말할 수 있다면, 힘들다 말하는 세상, 그래도 좀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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