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일곱 번째 서한에 대하여
오두재에서 하루 간격으로 쓴 최양업의 서한은 르그레즈와 신부(열다섯 번째 서한)와 리브와 신부(열여섯 번째 서한)에게로 보내는 것이므로 크게 다른 내용을 전하지는 않는다.
다만 열여섯 번째 서한에서 최양업은 김기량 펠릭스를 만난 사실과 그로 인해 제주도에 복음이 전파될 희망을 말하고 있다. 김 펠릭스는 제주도 사공으로 중국 해안에서 난파된 후 혼자 살아남아 상해와 북경을 통해 본국으로 송환된 사람이었다.
열일곱 번째 서한은 안곡에서 작성됐으며 현 경북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혹은 상주시 모동면 금천리 등지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 안곡에서, 1859년 10월 11일
안곡에서 쓰는 최양업의 열일곱 번째 서한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는 편지에서 ‘조선 순교자들이 공적으로 온 세계에 가경자로 선포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에 수록된 82명의 순교자들은 1857년 9월 23일 가경자로 선포됐다. 이 가운데 3명을 제외한 79명은 1925년 7월 5일 시복, 1984년 5월 6일 시성됐다.
“언젠가 우리 순교자들도 성인 반열에 오르시어 세계의 모든 교회에서 공식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날이 올 때 우리에게 얼마나 기쁘고 영광된 날이 되겠습니까?(중략) 아직까지는 조선 순교자들의 전구로 공적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아마 순교자들을 공경하는 우리의 정성이 미약하고, 순교자들에게 전구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것을 신자들에게 계몽하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양업은 신자들 사이에서 형제처럼 착하게 어울려 다니다가 악인의 본색을 드러내는 이들 때문에 곤혹을 치렀던 일도 고백한다. 또 성사를 받을 마음 준비가 덜 된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지 않았다가 그들이 분노를 터뜨린 일도 말한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조선 신자들의 편에 서는 착한 목자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가 언제나 박해와 환난만 당하고, 우리 조선 사람들은 전부 극악한 사람들이요, 배신자요, 강도요, 잔학무도한 난동자요, 폭도들인 줄로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한편으로 이러한 비참을 능가하는 더 큰 위안이 있습니다.(중략) 우리에게는 비록 배신자들도 많고 원수도 많지만 좋은 친구들도 많고 하느님 은총에 충실한 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악인들로 인해 곤경에 처했던 최양업이었지만 조선 신자들에 대한 애착과 굳건한 믿음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어 그리스도의 신앙을 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우리의 가련한 참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기에 이번에는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사부님과 경애하올 신부님들께 청하오니 우리를 잊지 마시고, 인자하신 하느님께 간절히 탄원하기를 그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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