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초에 불을 댕겼다. 이제 남은 초도 두 개.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설렌다. 네 개의 촛불이 모두 밝혀지면 그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예비신자 설경수(56·인천 간석4동본당)씨는 12월 25일 예수성탄대축일에 세례를 받는다.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구세주를 기다리는 이들 중 예비신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그들이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주변 사람들의 기다림은 더욱 진지하다.
설경수씨는 매주일 오전 9시면 부인과 함께 예비신자 교리반이 열리는 성당 교육관에 들어선다. 설씨가 이 문턱에 들어서는 데에는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또한 부인의 간곡한 권유와 기도, 기다림 덕분이었다.
설씨의 부인 김태숙(클라라·55)씨는 원래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그런데 처음 만난 수녀들의 정성어린 기도가 그녀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이끌었다.
5년 전 지병 치료를 위해 경기도 양평 산골마을에 들어간 설씨를 돌보기 위해 김씨는 당시 일산 직장에서부터 양평까지의 먼 거리를 매일 왕복했다.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찾아든 뇌출혈.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운전 중에 발발한 뇌출혈 증상으로 인근에 있던 김씨의 언니는 평소 알고 있던 수녀님들께 긴급 도움을 청했다. 수녀님들의 기도 속에 평정을 되찾은 김씨는 응급수술에 들어갔고, 수술 내내 자신의 옆을 지켜준 온화한 미소를 느꼈다.
회복 후 그녀는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를 갖고 곧바로 성당을 찾았다. 하지만 설씨는 달랐다.
“아내에게 당신의 신앙생활은 존중하겠지만, 나에게 입교를 강요하진 말라는 조건으로 성당에 가라고 말했었죠.”
이후 딸과 아들도 모두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 중에 배우자를 만나 성가정을 이뤘다. 그래도 설씨는 주일이면 혼자 집에 있거나, 개인생활을 즐겼다.
“삶에서 종교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나약하거나 늙어서 심신이 쇠약해졌을 때 필요한 의지처라는 생각이 강했지요. 그저 막연히 나에게도 때가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공동체 안에서 친교를 이루는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평소에도 늘 하던 봉사활동이었지만,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모습이 더욱 의미있게 느껴졌다. 설씨도 가족들이 다 함께 봉사활동에 나서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비신자 교리반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곁에서 남편의 입교를 기다려온 김씨의 기쁨은 두배였다.
“예비신자 교리를 들으면서 완성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전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말하며 생활해왔거든요. 하지만 이 세상살이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함께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교리를 받는 기간 동안 설씨는 하느님을 체험하고 ‘찐한’ 감동을 느끼고 싶어 종종 조급함도 느꼈다. 하지만 곧 믿고 기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성가정을 이룰 그 시간을 준비하며, 오늘도 기다림의 기쁨을 만끽한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