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외신종합】교황청이 지난 10월 30일부터 열어온 ‘마태오 리치 신부(Matteo Ricci ·1552~1610) 특별전’이 연일 관람객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성 베드로 광장 브라치오 디 카를로 매그노홀에는 16세기 말 예수회의 중국 진출 역사와 마태오 리치의 과학적 업적을 살펴보려는 관람객들로 줄을 잇고 있다.
교황청은 마태오 리치 신부의 선종 400주년(2010년)을 맞아 ‘역사의 정점에서, 마태오 리치-로마와 베이징 사이’를 주제로 이번 특별전을 기획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와 파올로 베네로세의 작품을 비롯해 16~17세기 서양의 미술작품과 공자의 성물,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 명 왕조의 장례식 입상 등 여러 시대에 제작된 중국의 입상과 조각 등이 선보였다.
이와 관련해 리치 신부의 고향인 이탈리아 마체라타교구의 클라우디오 줄리오도리 주교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마태오 리치 신부는 17세기 유럽과 중국 간 대화와 교류에 진정한 다리 역할을 했다”며 “그는 서양 선교사임에도 불구하고 30년 가까이 중국인처럼 살면서 명나라 과학발전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클라우디오 주교는 이어 “마태오 리치 신부는 중국의 학자 및 문화계 인사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서양 여러 나라에 중국의 유교 경전을 소개하는 위대한 행보를 보였다”며 “이는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인들 마음속에 리치 신부에 대한 존경심이 살아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 1월 24일까지 이어질 이번 전시회가 중국 국민과의 우정과 중국 내 가톨릭 신자들과의 친교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이에 앞서 마체라타교구에 보낸 서한에서 “마태오 리치 신부는 아시아 대륙에 복음화를 전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와 중국 전통 문화와의 조화와 상생을 모색했다”며 “특히 그가 선교사 신분으로서 중국 전통과 문화를 존경한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예수회 출신의 마태오 리치 신부는 1601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최초의 유럽 사절이었다. 명나라 황제로부터 베이징 거주 허락을 받고 선교에 나선 리치 신부는 중국 본토 표준어인 만다린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다녔다.
이마두(利瑪竇)라는 중국식 이름을 사용했던 그는 ‘기하학 원본’ ‘만국여도’ 등 서양 학문을 중국에 소개했으며 1595년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중국어로 저술했다.
리치 신부는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접목을 시도하며 선교 발판을 마련했다. 중국 전통사상인 유학을 수용하면서 낯선 천주교를 전달한 보유론적(補儒論的) 선교방식은 지금도 문화 적응주의 선교의 전형이 되고 있다.
그는 1610년 선종 후 중국 황실의 허가를 받아 중국 베이징에 묻혔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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