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아홉 번째 서한에 대하여
열아홉 번째 서한은 최양업 신부가 선종(1861년 6월 15일)하기 전 쓴 마지막 서한으로 선종 약 9개월 전에 작성된 것이다.
서한은 죽림에서 작성됐다. 죽림은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의 간월산중 교우촌이나 죽전, 간월산 중턱의 죽림굴 등으로 추정된다. 수신인은 ‘리브와 신부님과 르그레즈와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고 경애하올 신부님들’이다.
▧ 죽림에서, 1860년 9월 3일
“먼저 두 분 신부님들께 공동 서한을 보내드리는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합니다. 이 작은 서한을 두 분께뿐 아니라 모든 경애하올 신부님들께 이렇게 한꺼번에 보내드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최양업은 왜 리브와 신부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동시에 편지를 썼던 것일까.
“저는 경신박해의 폭풍을 피해 조선의 맨 구석 한 모퉁이에 갇혀서 교우들과 아무런 연락도 못하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 달 전부터 주교님과 다른 선교사 신부님들과도 소식이 끊어져, 그분들이 살아계신지 아닌지조차도 모릅니다.”
박해의 칼날이 휘몰아치던 때, 최양업은 불안과 초조함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17명의 신자들이 체포됐다는 것, 교우들의 전답과 생활필수품을 빼앗겼다는 것 등을 상세히 보고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대단히 많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중략) 깊은 산골짜기마다 꼭꼭 숨어 사는 천주교 신자를 모두 체포할 뜻은 없어 보입니다. 대신 포졸들을 사방에 파견해 신자들을 혼란케 하고 주민들을 선동해 신자들을 핍박하도록 충동하고 있습니다.”
최양업은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혹독한 매를 맞고 그 상처로 순교한 노파, 아버지와 함께 형장에 나가게 해달라고 간청한 16세 소년, 포졸에게 잡혀 고생하다 병석에 누워 숨진 동정녀 등 신앙선조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다.
“박해 전에는 천주교에 대한 인기가 상승해, 외인들 중에서 예비신자들이 속출했으므로 우리는 큰 위안을 받고 희망에 부풀었습니다.(중략) 어떤 마을에서는 주민 전체가 기도경문과 교리문답을 얼마나 열성적으로 배우는지 경쟁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박해로 인해 외교인들이 천주교를 박멸하기 위해 무장하게 됐고 마을마다 천주교의 동조자들을 추방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양업은 조정이나 백성이 천주교 신자들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는 이어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시작으로 기도를 봉헌한다.
“저희를 재난에서 구원하소서. 엄청난 환난이 저희에게 너무도 모질게 덮쳐 왔습니다. 원수들이 저희에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높은데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그들을 대항하여 설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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