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기 예수께서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그런 아기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의 벗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이사장 김운회 주교, 회장 김용태 신부) ‘사랑의 나눔회 나눔의 집’과 그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매주 수·목요일 새벽 5시면 서울 남구로역에서 ‘빨간 밥차’로 일용근로자들에게 아침을 제공한다. 속도와 긴장감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음식을 조리하는 나눔의 집에서부터 빨간 밥차 무료배식까지 동행취재 했다.
# 임무 하나 : 영양 만점 쇠고기국을 끓여라
오후 8시30분. “탁탁탁탁” “보글보글” 서울 중랑구 망우3동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사랑의 나눔회 나눔의 집’(원장 박대성) 주방. 20년 경력의 베테랑 주방장 이용준씨가 가락시장에서 공수해온 신선한 재료를 요리하는데 한창이다.
임무는 내일 새벽 남구로역의 일용근로자들에게 무료로 배식할 쇠고기국 만들기. 목표시간은 11시. 적어도 1시간은 돼지 뼈로 육수를 우려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지 않다. 이 주방장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전국의 공사현장을 누벼온 근로자들의 입맛이 워낙 까다로워 정성을 다한다. 어느새 주방에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10시50분. 뚜껑을 열자 김치, 쇠고기, 육수가 잘 어우러진 쇠고기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소한 냄새만큼이나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빨간 밥차에서 한 번 더 데워야 비로소 근로자들에게 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쇠고기국을 큰 통 3개에 나눠 담는다. 어느새 주방이 증기로 가득찼다. 쇠고기국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사랑의 온기도 뜨거워진다.
# 임무 둘 : 지친 몸을 일으켜 밥을 지어라
오후 10시30분. “쿵쿵쿵” 나눔의 집 임태근(알렉시오·뇌병변·언어장애 2급) 실장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1층 주방과 3층 방을 번갈아 드나든다. 주방에서 알아서 잘 할거라 믿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수시로 상황을 점검해야 안심이 되나보다. 맡은 임무를 다 마치지 못하면 내일 근로자들은 아침을 굶어야 한다. 1주일동안 빨간 밥차만 기다리는 근로자를 생각하면 방심할 수 없는 일이다.
나눔의 집이 쇠고기국 냄새로 가득하다. 방에 있던 임 실장도 내려와 쇠고기국 맛을 본다. “역시. 이 주방장 솜씨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니까. 허허허.” 임 실장이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환하게 웃는다. 이것저것 챙기다 자정이 돼서야 방으로 들어선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밥을 해야 하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어제는 밤을 새고 남구로역에 무료배식을 다녀오고 오늘은 서울역 근처 쪽방촌에 도시락 500개를 배달했다. 오후 8시가 돼서야 끝난 강행군의 연속이다.
새벽 2시. “따르릉 따르릉” 지친 몸을 간신히 일으킨 임 실장이 습관적으로 밥하는 곳으로 향한다. 다행히 밥은 ‘다단식 상업용 가스밥솥’이 있어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척척. 15년 동안 봉사해온 정천재씨도 함께여서 한결 수월한 밥 짓기가 되간다.
새벽 2시45분, 120여 명분의 밥 짓기 완료.
# 임무 셋 : 밥과 반찬, 쇠고기국을 남구로역까지 무사히 옮겨라
새벽 3시. 이제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춰간다. 쇠고기국과 밥을 승합차에 싣기만 하면 이곳에서의 임무는 완료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도 외투 하나만 걸친 임 실장이 40분 째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다. 불편한 몸이지만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해준다는 생각 때문일까. 임 실장의 표정에 행복함이 가득하다. 오늘은 승합차가 조금 늦는 모양이다. “부르릉 털털털… 부르릉 털털털” 드디어 승합차가 모습을 드러낸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이제 제가 맡겠습니다.”
새벽 4시45분, 임무교대 시간. 차에 사랑과 정성이 가득담긴 음식을 싣고 빨간 밥차가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 운전은 26년 동안 꽃동네, 청주 성심원 등에서 봉사해온 김형주(라우렌시오)씨가 맡았다. “부릉부릉 에에엥에엥” 그런데 봉고차의 엔진 소음이 심상치 않다. 매주 화·수요일 쪽방촌 사람들에게 500여 개씩의 도시락을 실고 다니면서부터다. 교체할 때가 한참 지났지만 매일같이 이어지는 무료급식에 새차는 꿈도 꾸지 못한다. 방법이 없다. 조심조심 천천히. 운행속도는 60km 미만이다. 10여 분이 지나자 이번 임무의 대장 박대성 원장과 현지 봉사자 김경기씨가 합류한다.
새벽 4시, 한강대교를 거쳐 원호대교를 지난다. 짙은 어둠이 깔린 새벽에 사랑을 실은 사랑의 나눔회 봉고차가 아침식사를 기다리는 근로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 임무 넷 : 또 한 명의 예수, 일용근로자에게 사랑이 담긴 아침을 정성을 다해 대접하라
새벽 4시35분. 남구로역 근처 공영주차장. 빨간 밥차가 주차돼 있는 곳이다. 한번 움직일 때마다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 남구로역 근처에 밥차를 주차해놓고 있다. 빨간 밥차는 2005년부터 전국을 누비는 가난한 이웃들의 든든한 후원자. 1시간에 300여 명분의 음식을 조리할 수 있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빨간 밥차가 웅장한 엔진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4시40분, 목적지 남구로역에 도착했다.
선택받으면 일당을 벌어 그날을 버티고, 선택받지 못하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인력시장이다. 배식은 5시부터지만 이미 일용근로자 100여 명이 빨간 밥차 앞에 모여 있다. 길 건너 일용근로자들까지 합치면 약 600여 명이 남구로 새벽 인력시장에서 서성이고 있다.
새벽 5시, 무료배식 시작. 이날 배식에도 어김없이 구로3동본당 이탁수(베드로), 최병호(요셉), 임옥순(막달레나)씨 등 자원봉사자가 함께한다. 한켠에는 일거리를 찾고 있는 근로자들이 서성이고 있다. “아자. 오늘은 돈을 벌수 있겠어.” 환호소리와 함께 선택받은 10여 명의 일용근로자들이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승합차에 몸을 싣는다. “에휴. 오늘도 글렀구먼.” 동시에 한숨소리도 들린다.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공사현장에 가면 아침을 든든히 먹을 수 있는 반면 선택받지 못하면 아침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다.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은 밥차에서 아침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6시20분이 되자 준비해온 음식이 다 떨어져 간다. 다행히 일거리를 찾지 못한 근로자 대부분이 든든한 아침을 해결한 상태다. 일용근로자들이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봉사자들은 저절로 피로가 풀리는 듯 환하게 웃었다.
정신없이 준비했던 무료배식 임무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현장을 말끔히 정리한 봉사자들이 모여, 마침기도를 바친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 거처를 잡으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웃 안에 계십니다. 사랑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세요.”
■ 사랑의 나눔회는…
사랑의 나눔회는 매주 월~금요일에는 어르신들 점심제공, 매주 화~수요일에는 서울역 근처의 쪽방촌에 도시락 1000개 배달, 매주 수·목요일 새벽은 남구로역 일용근로자 등 일주일에 총 1750여 명에게 따뜻한 밥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다.
※후원문의 02-434-9345 사랑의 나눔회
※후원계좌 766-01-0009-771 국민은행, 예금주 : 사랑의 나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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