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의 은총으로 얼룩진 죄의 상처 낫게 하소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는 12월 7일부터 14일까지 여드레간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컬(교회일치) 국제 순례에 나섰다.
다양한 그리스도교 교단들의 일치운동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에큐메니컬운동의 새로운 토대를 다지기 위해 지난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된 이번 순례에는 한국 천주교 대표로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가맹교단 교단장과 교회일치 운동 관계자 등 20여 명이 함께했다.
#가난으로 일치의 모범을 산 프란치스코 성인
에큐메니컬 순례의 첫 걸음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도시로 알려진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아시시(Assisi)로 향한 것은 순례단 모두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비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존경과 사랑을 받는 프란치스코 성인. 그가 남긴 최대의 유산은 가난 그 자체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순례였다. 가난한 마음을 일치의 밑거름으로 삼으라는 이끎이었을까,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와 향기가 남아있는 아시시를 돌아보는 순례단은 마음마저 여미는 모습이었다.
순례단의 첫 기착지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처음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아시시 마을 인근 리보토르토(Rivo Torto)에 위치한 리보토르토성당. 가축을 기르던 움막을 그대로 공동체의 본거지로 삼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과 겸손의 마음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마흔네 살의 나이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터가 남아있는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거쳐 순례단의 발길이 멈춘 곳은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프란치스코 성인’화 앞.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인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6∼1337년)가 프란치스코 성인을 존경하는 마음에 대성당 벽에 프레스코화로 남긴 성인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대화의 중요성을 간파한 그의 삶을 들려주는 듯하다. 동물은 고사하고 사람끼리도 대화가 쉽지 않은, 아니 대화를 거부하는 오늘의 세태를 아프게 찔러왔다.
“필요성 앞에서는 법이 없다.”
세속의 규율을 뛰어넘어 성인이 뿌리고자 했던 씨앗을 묵상하는 가운데 성인이 살았던 가난에 대해 들려주는 현지 수사의 말이 가슴에 깊숙이 박혀들었다.
“어느 날 존재도 없이 깨끗이 사라져도 저는 오로지 주님의 것입니다.”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첫 미사를 봉헌한 김희중 대주교는 “은총은 공짜라는 뜻이다.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부여해주신 것”이라면서 “순종과 겸손으로 주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 신앙”이라며 교회일치를 위한 주님의 은총을 청했다.
#이해와 사랑, 그리고 일치
교황 알현은 한국 그리스도교 형제 교단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순례단은 12월 9일 오전 10시30분 바오로 6세홀에서 마련된 일반 알현 시간에 맨 앞자리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만났다.
교황은 순례단 대표들과의 만남에서 일일이 손을 잡고 “가톨릭교회가 아님에도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며 뜨거운 환영의 마음을 표하고 “한국에서 일치운동이 잘 이뤄지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지용수 목사는 “가톨릭교회를 위해 기도해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는 교황님과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며 교황 알현의 감격을 드러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전병호 목사(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장)는 “부드럽고 세계를 품 안에 품은 듯한 교황님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일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서 “개신교와 가톨릭교회가 하나될 때 세계가 평화로워지고 선교의 열매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순례단은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 의장 발터 카스퍼 추기경을 만나 일치운동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과 원칙을 듣고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를 상징하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사도가 손을 맞잡고 서있는 이콘이 내려다보는 회의실에서 진행된 국제토론회는 교회일치 운동의 깊이와 폭을 새롭게 가늠하게 한 자리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오성 목사는 이 자리에서 “다양성 속에서 한국 교회가 어떻게 일치할 것인지 모색하기 위해 순례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하고 “오는 2013년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에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해주길” 요청했다.
이에 대해 카스퍼 추기경은 “그리스도교 교단간 평화와 일치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한국에서 열리는 WCC 총회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화답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