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은 대구대교구 100주년(2011년 4월 8일)을 앞두고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를 연재한다.
1987년 창간 60주년을 맞아 연재했던 ‘드망즈 주교 일기’를 23년 만에 다시 읽는 것이다. 100여 년 전 초대 대구대교구장 드망즈 주교가 남겼던 일기장의 먼지를 털고, 켜켜이 적어 내려간 남방교회의 역사를 한 줄씩 짚어가며 드망즈 주교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주교님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뮈텔 주교가 드망즈 플로리앙(Demange, Florian) 주교의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1911년 4월 23일 오전 8시. 드망즈 주교가 자신이 경영해온 ‘경향신문’의 사진틀을 짜기 위해 파이프에 막 불을 붙인 그때는 부활 제2주일이었다. 뮈텔 주교가 손에 있던 전보를 건넸다. ‘드망즈, 플뢰리 주교’. 파리에서 발신된 이 편지는 대구대교구를 비롯한 남방교회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1911년 6월 26일 월요일
오늘 아침, 급행열차 편으로 서울을 출발했다. 역까지 배웅 나온 뮈텔 주교와 선교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내 눈은 작별인사를 하는 많은 교우들을 향한다.
나의 착좌식을 위해 서울교구 대표인 드브레 신부와 시잘레 신부가 대구까지 동행했다.
오후 3시45분. 대합실에 도착해 서둘러 예식용 망토를 입고 역 광장으로 가 그곳에 모여 있는 군중들에게 주교강복을 주며 광장을 빙 돌았다.
본당까지의 행렬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났으나 질서정연했다. 성당으로 가는 길 전체가 장식돼 있었다.
나는 우선 주교 중백의를 입기 위해 주교관으로 임시로 세낸 집(한옥)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본당의 바깥문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흰 제의를 입고 로베르(김보록) 신부가 주교 영접 예식에 따라 나를 맞이했다.
중앙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후, 영성체 난간 가까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 주교관을 쓰고 주교 지팡이를 짚고 성당을 가득 메운 군중들에게 연설을 했다.
선교사들이 순명서원을 했고 이어서 영성체 난간에 무릎을 꿇은 교우들이 내 주교반지에 입을 댔다. 주교 강복으로 첫 번째 의식이 끝났다.
저녁이 되자 활기가 넘치는 멋진 학생들 몇몇이 축하의 자리를 열었다. 장식 조명이 켜지고 폭죽이 터졌다. 나는 10시경 자리를 조용히 떴다.
드망즈 플로리앙 주교(1875~1938)
초대 대구대목구장. 세례명은 플로리아노다. 한국명은 안세화(安世華). 1875년 4월 25일 프랑스 알사스 주의 로렌 지방에서 태어나 파리로 이주해 생 쉴피스 신학교, 파리 가톨릭대학, 파리 국립대학 등에서 공부했다.
1895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전공, 1898년 6월 26일 사제품을 받았으며, 조선교구 선교사로 임명돼 같은 해 10월 8일 한국에 입국했다. 입국 후 한국어와 풍속을 익힌 드망즈 신부는 1899년 5월 부산본당 신부로 임명돼 사목했으며, 1900년 9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전임됐다. 이후 약 6년 간 신학교에서 한국인 성직자의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드망즈 주교 일기는…
드망즈 주교의 일기(Journal personnel de Mgr.F.Demange)는 드망즈 주교가 1911년 4월 교구장 임명부터 선종하기 불과 몇 개월 전인 1937년 12월까지 쓴 일기다.
26년의 기록을 담고 있는 이 일기는 프랑스 원문의 총 면수만 1307쪽에 달하며, 일기와 함께 사진자료까지 수록돼 있다. 일기에 사진까지 곁들여져 있는 경우는 드문 일이고, 사진 또한 800매에 달한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드망즈 주교가 남긴 사진과 일기는 일제시대 교회사의 빈곤한 자료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드망즈 주교는 1936년 12월 31일, 그동안의 일기를 5년씩 한 권으로 묶어 5권으로 분류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요는 하느님이 허락하는 날까지 나의 길을 계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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