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등 개신교 주요 교단들의 씨가 뿌려지고 싹을 틔운 영국. 한국 그리스도교 대표들이 나선 에큐메니컬 순례의 두 번째 기착지인 영국은 그 첫걸음에서부터 묘한 떨림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오래도록 자신의 손에 쥐어오던 것을 놓는 결단이요 새로운 영성과의 만남에서 오는 것이었다. 손에 쥔 것을 놓을 때 다른 이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한, 그래서 더욱 복된 시간이었다.
일치를 향한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영국에서의 여정은 런던에 중심을 두고 있는 구세군 세계본영과 영국감리교 본부, 세계성공회협의회(ACC) 방문 등으로 이어지며 환대와 초대로 결실을 맺는 모습이었다.
구세군 세계본영 방문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밀레니엄브릿지 근처 퀸빅토리아가에 자리한 구세군 세계본영에서는 총사령관을 대신해 국제업무 담당 참모가 순례단을 맞았다.
담당 참모는 한국 순례단과 함께한 자리에서 “에큐메니컬 여정이 우리 모두에게 항상 쉬웠던 것은 아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정의와 같은 문제에 직면할 때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며 구세군이 교회일치운동에 기울이고 있는 깊은 관심과 노력에 대해 설명했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 송용민 신부는 “구세군은 실천적 표양을 통해 교회일치운동을 고양시켜 나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조성기 목사는 “구세군은 복음의 전사로서 역사성과 영성이 잘 조화된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2013년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영국감리교 본부 방문
런던 중심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Abbey) 인근에 위치한 영국감리교 본부에서는 세계교회교류 담당 마이클 킹 씨와 대외협력국 크리스 엘리엇(Chris Elliott) 총무 등이 한국 순례단을 환대했다.
이날 방문에서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사랑을 실천하는데 교단의 차이는 문제가 안 된다. 복음의 본질적인 가르침과 정신은 교파를 떠나서 일치해야 할 것이다. 다르다는 것이 모두 꼭 틀리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니 복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각자의 기득권에 연연해하지 말고 성령의 이끄심에 겸손하게 순종하면 기대 이상의 결실을 거둘 것이다”고 말했다.
엘리엇 총무는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 순례단의 방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영국감리회도 일치?협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성공회협의회 방문
에큐메니컬 순례의 여정은 세계성공회협의회와 가진 국제협의회로 절정에 다다랐다. 세계성공회협의회 사무총장 케네스 키론(Kenneth Kearon) 신부를 비롯해 캔터베리 대주교 보좌관 스티븐 쿠퍼 씨 등 성공회 관계자들은 캔터베리 대주교의 런던 집무처인 람베스(Lambeth) 궁에서 순례단을 맞았다.
이날 만남에서 김희중 대주교는 “상대의 본질적 정신을 존중하며 서로를 존중하면 성령께서 이끌어주실 것이며, 이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며 “이번 순례는 일치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키론 신부는 “에큐메니컬운동에 함께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일치에 헌신하는 교회들이 진리를 왜곡하거나 잃고 있다고 의심한다”고 지적하고 “교회일치에 나선 형제들이 직면한 도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진리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신앙에 대해 더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위험성이야말로 일치운동에는 도전이고 이 모임을 있게 한 배경”이라고 밝히고 “나 자신에게만 진리가 있다는 게 잘못됐음을 깨닫는 것이 일치운동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협의회에서 한국 순례단은 캔터베리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 대주교의 한국 방문을 요청했다.
캔터베리 대성당 순례
성공회 총본산인 캔터베리 대주교좌가 있는 잉글랜드 남동부 켄트 주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캔터베리 대성당을 향하는 순례단의 가슴은 왠지 모를 설렘으로 일렁였다. 캔터베리 대성당을 둘러보고서야 그 마음이 1170년 12월 29일 그곳에서 순교한 캔터베리 대주교 성 토마스 베케트 순교자가 전해주는 감동 때문임을 알게 됐다. 교회의 자율권을 침해하려는 헨리 8세 왕에 대항해 교황에게 충성하며 교회의 권위를 수호하다 왕을 추종하는 4명의 기사에 암살당한 베케트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있다는 설명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베케트 성인의 시신은 헨리 8세 추종자들에 의해 멸실되었지만 시신이 안치되었던 자리임을 알려주는 동판이 남아 1년 내내 그 자리에 촛불을 밝혀 성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일치의 정신으로 함께한 미사
순례의 마지막 날, 순례단은 그리스 정교회 ‘모든 성인들의 성당’을 방문해 3시간 넘게 정교회 미사에 함께하며 교회일치를 위해 두 손을 모았다.
미사를 주례한 그레고리오스 대주교는 한국 순례단을 소개하며 같은 육화를 믿는 그리스도인임을 강조하고 “성탄을 기다리면서 육화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자. 미사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고 강조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한국 순례단을 대표한 인사말을 통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한 형제인 그리스도교 형제끼리 사랑하고 일치하지 않으면서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한다는 것은 모순이다”면서 “종교 차원을 떠나서도 지구촌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하나가 되라는 성령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같은 시간 순례단의 일부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성공회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일치의 정신을 되새겼다. 에큐메니컬 순례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일치를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여정을 계속될 것이다.
■ 에큐메니컬 순례 이끈 김희중 대주교
“일치운동은 부르심이자 은총”
주요 교단장들 대거 함께해 상호간 이해의 폭 넓힌 기회
“일치운동은 하느님의 부르심이자 은총입니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통해 주님의 은총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여정이었습니다.”
지난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에큐메니컬 순례에 함께한 김희중 대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는 이해 믿음 사랑이라는 말로 이번 순례를 평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순례단을 이끈 김 대주교는 교황 알현과 발터 카스퍼 추기경과의 만남 등을 통해 교회일치운동의 명쾌한 방향을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에큐메니컬 순례의 결실로 꼽았다.
캔터베리 대주교좌성당을 둘러보며 세속의 권력에 맞섰던 토마스 베케트 성인의 교회에 대한 충성과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김 대주교는 “교리의 차이를 넘어 베케트 성인의 정신과 성덕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 그리스도교 주요 교단장들이 대거 함께해 기도하는 분위기가 넘쳐나고 영적으로 보다 풍요로운 순례였다”고 밝힌 김 대주교는 “교단 상호간에 이해의 폭을 넓혀나갈 때 교회일치의 지평이 새로워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교단장이나 지도층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지방 교회와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도 일치를 위한 염원이 확산될 때 그리스도의 수많은 지체들이 보다 분명한 주님의 모습을 뵙고 그로 인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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