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력의 활동으로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각각 고유의 인격을 형성한다. 이렇게 볼 때 지력은 우리를 인간답게 해 주는 가장 소중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 능력은 각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이해하는 정도도 각 사람마다 다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지력을 영혼의 눈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력 자체의 능력으로는 자연 학문만 할 수 있지, 초자연적인 지혜는 이해할 수도 발전해 나갈 수도 없다.
하느님께서 초자연적 방법으로 당신의 은총을 우리의 지력에 부어 주셔야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 은총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부른다. 믿음에 의해 깨진 지력은 자연적 방법과 초자연적 방법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인간의 지력은 자연적인 것이든 초자연적인 것이든 일반적인 것이든 특정한 것이든 그 모든 지식을 버려야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런 지식으로부터 멀리할수록 우리가 초자연적인 지식을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지력의 표현들과 영상들을 모두 지워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한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지력의 정화라고 부른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믿음은 우리의 지력을 정화하는 힘이 있다. 믿음은 우리의 지력에 초자연적인 힘을 주며 그 초자연적인 빛으로 지력안에 있는 자연의 빛을 정화하고 변형시킨다.
지력의 성숙은 우리가 얼마나 믿음의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믿음으로 자연적인 지력활동을 포기하면 초자연적인 신비의 계단을 오르며 하느님의 심오한 지혜 속으로 깊게 들어갈 수 있다.
믿음의 학문은 지력의 학문을 초월한다. 믿음은 우리가 희망하여 바라는 것에 근원 역할을 하며 우리 육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아주 높은 하느님의 지혜와 아주 명확한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 지력에 감추어져 있어서 어둡게 보인다고 하였다. 믿음의 심원에서 지력은 스스로 많은 것을 계산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어둠을 통과해야 하므로 소경이 되는 것이다.
믿음의 역동적인 힘은 우리를 모든 불완전한 지력의 지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면서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러므로 지력은 믿음을 통하여서만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것이다. 지력은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께 대한 보다 높은 지혜를 얻고 하느님의 지혜와 일치하여 하느님의 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 이 글은 가톨릭대 출판부의 「신학과 사상」 44호(2003년 여름)에 실린 김기화 신부의 ‘현대사제의 영성’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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