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어느 때가 되면 나름대로 ‘버리고 살아가기’ 연습을 한답시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쓸데없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정말 필요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는데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번에도 버린 목록을 보면 몇 달, 혹은 몇 년, 아니 어떤 것은 내가 수도원 들어 올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도 있었습니다. 버리면서도 ‘아깝다, 아까워! 버리지 말까’라는 말을 계속 해 댑니다. 이번에 버린 것 중에 심지어 5년 전 약국에서 타온 감기약들도 있었습니다. 그 약을 먹다가, 낫게 되면, 남은 약을 잘 모아 두었다가, 혹시 똑같이 아프면 그때 다시 먹어야지, 하면서 버리지 못했던 약들도 이번에 버렸습니다. 또 피정 지도로 해외에 갈 경우, 혹은 수도회 공식 업무로 해외에 갈 경우 호텔에서 가지고 온 편지 봉투, 메모지 등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청빈’을 살아야지, ‘청빈’해야지, ‘영적 청빈’을 제대로 실천해야지, 하지만 비우고 살아가는 것이 정말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았던 이유를 묵상 중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내가 만든 ‘부정적 명령어’였습니다. 즉 ‘아껴 써야 한다!’ 그 말이 언제나 내 머리 속에 내 삶 속에서 나에게 끊임없이 명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절약 정신이 나에게 수도 생활을 건강한 기능으로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했지만, ‘부정적인 명령어’로 나에게 미친 것도 있습니다.
작은 가족 공동체 안에서 아껴 쓰고, 절약하며 살아가는 것은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내 안에서 ‘부정적인 명령어’로 만들어 버릴 때에는 내 것을 움켜쥐는 그런 생활 방식으로 바뀌어져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가 만든 ‘명령어’들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영향으로 생겼건 간에, 어릴 때부터 갖게 되는 ‘명령어’는 좀처럼 변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명령어’들이 건강하게 작용하면 대인 관계 안에서 좋은 역할을 하게 되지만, 건강하게 작용하지 못하게 될 경우 그 ‘명령어’들은 반드시 아집과 독선, 이기적인 생활 태도나 맹목적인 행동으로 치닫게 합니다.
살면서 혹시 이건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그래도 습관처럼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면 한번 즈음, 내 안에 있는 ‘명령어’들이 건강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성찰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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