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100만 시대다. 한국어 교실, 한국 요리 교실, 한국 예절 교실, 한국 문화 교실 등 여기저기서 이주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중심에 전국 각 교회 가톨릭교회가 있다. 그러나 교회가 시대의 요구에 숨 가쁘게 부응하는 사이, ‘이주사목’이 아니라 ‘이주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교회의 이주사목활동의 정체성과 비전에 대한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천안 오룡동본당 외국인 미사에서 다문화 성가정 탄생을 알리는 의미있는 세례식이 열렸다.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직접 세례식을 주례해 다문화 성가정 탄생을 축복했다. 그간 이주사목에 쏟아부었던 노력이 세례식과 성가정의 탄생이라는 사목 결실로 맺히는 이날 외국인미사에 한국 다문화가정의 미래가 보였다.
# 오랜 기다림, 그리고 설렘 “여보, 고마워요!”
2009년 12월 20일 일요일 오전 9시, 심용보(56)씨가 거울 앞에 섰다. 오늘은 심씨가 ‘바오로’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다. 나이 50줄에 들어선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마음 속에 이런 기쁨과 설렘이 있다니, 심씨는 싱글벙글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번 기쁨을 느꼈다. 필리핀에서 온 아내 마가리타씨도 단장을 끝내고 다가온다. 넥타이 모양을 만져주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준다.
결혼 3년 만에 아기를 가진 마가리타씨는 요즘 행복하다. 남편 심씨가 3년간의 망설임을 끝내고, 드디어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태어날 아기와 오늘 세례를 받은 남편과 함께 매주일 하느님을 찾아올 생각을 하니, 마가리타는 벌써 천국에 온 기분이다.
“여보, 고마워요! 나의 믿음을 따라와줘서…. 그리고 우리아기에게 다문화 성가정을 선물할 수 있게 해줘서….”
# 신부님의 마중 “반갑습니다. 형제님!”
오후 1시, 걸음을 재촉해 간 천안 오룡동성당. 눈이 하얗게 쌓인 성당 마당에 수단을 입은 맹상학 신부(대전교구 이주사목담당)가 심씨 가족을 반갑게 맞는다.
“어서 오십시오 형제님, 정말 잘 오셨습니다!”
맹 신부의 환대에 심 씨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날 같이 세례를 받는 한상년(라파엘·43)씨와 박상구(요한보스코·44)씨도 감사한 마음은 마찬가지다. 아내를 성당으로, 또 모이세(천안 이주사목센터) 회관으로 데려다주며 성당 문턱을 오가는 동안 아내의 신앙에 대해 조금씩 마음이 열려옴을 느꼈다. 망설이며 서성이는 이들을 교리실로 이끈 장본인이 바로 맹 신부다.
“형제님들, 축하드립니다. 이제 다문화 성가정의 가장이 되시는 겁니다!”
# 축복의 순간 “눈이 와요!”
오후 2시 천안 오룡동성당 맨 앞줄. 가슴에 꽃을 단 아저씨 다섯 명이 수줍게 앉아있다. 이들에게 손수 세례를 주고, 다문화 성가정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유흥식 주교가 먼 길을 왔다.
“오늘 여러분은 한국 다문화가정에 중요한 획을 긋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아내의 신앙까지도 받아들인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유 주교의 손에서 부어진 성수가 다섯 명의 다문화 가장들의 이마 위로 맑게 흐른다. 지켜보는 다문화가정 아내들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고였다.
“이제 다문화 성가정의 가장이 된 우리들이 다른 가정의 모범이 됩시다.”
다섯 명의 새 영세자들의 다짐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밖으로 함박눈이 하얗게 내리기 시작했다.
# 우리도 저들처럼…“축하합니다!”
세례식에 참석한 300여 명의 외국인들은 이날 다문화 성가정의 탄생을 함께 축하했다. 함께 세례를 받은 6명의 아이들은 “엄마! 우리 아빠도 언젠가는 성당에 오겠지?”라며 희망을 가졌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외국인 근로자들도 언젠가 자신도 성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낙원을 그렸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축복 속에 세례식이 끝났다.
“자! 이제 모이세 사도회 1기 발족식입니다! 모두 모이세 회관으로 모이세요!”
다양한 피부색깔의 외국인들이 성당 맞은 편 모이세 회관으로 건너갔다. 눈발이 하얗게 날리는 하느님의 축복 속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이주민들의 발걸음이 씩씩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