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내적 복음화를 구현하기 위해 특별히 순교영성을 강조한다. 이 주교는 사목교서에서 교구민 모두가 한국 순교자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고 교구민이 일치하는 가운데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선배 신앙인들의 순교는 오늘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순교는 교회와 세계의 유익을 위한 희생제사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42항)’은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제자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신 스승을 본받고 피를 흘려 스승과 동화되는 순교는 교회에서 최상의 은혜로 또 사랑의 최고 증거로 여겨진다’고 밝힌다.
초대 교회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160~220)도 그의 저서 호교론에서 교회의 확장에 기여하는 데 있어서 특별히 강조되는 순교의 역할을 ‘모범의 효력’이라고 했다.(호교론 21) 또 ‘너희들이 우리를 타작(살해)할 때마다 즉시 우리는 더 많은 숫자로 불어난다. 그리스도인의 피는 그 씨앗이다’(호교론 50, 13)라는 세기를 관통하는 명언도 남겼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비약적인 성장을 통해 아시아교회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발전을 거듭하는 것은 순교자들의 희생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103위 순교자들이 성인반열에 올라 있으며, 지난해 6월 3일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한국 순교자 124위와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한 공식 청원서를 제출했다. 또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2002년과 2005년, 2009년 세 차례에 걸친 세미나를 통해 시복시성 추진에 논란이 되었던 한국교회 창설주역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순교자들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바오로 사도의 삶을 그대로 이어 받아 생활했으며, 죽기까지 그리스도께서 우리 몸에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증거했다.
현재 한국교회는 순교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그 기틀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은총을 가득 안고 있다. 그리스도교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고 그 위에 비로소 교회가 자리한 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몇 손가락 안에 꼽는다. 순교자들의 얼과 자취가 서린 성지가 전국 곳곳에 자리해 있고 그들의 삶을 따르고자 순교자들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순교자들의 생생한 신앙의 삶이 곳 오늘날 신앙생활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는 기쁨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선배 신앙인들처럼 우리 교회 신자들이 피로써 목숨을 내어놓고 그리스도를 따를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피의 순교가 있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자유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되는 책임을 요구한다. 순교자들의 삶을 따르는 백색순교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세속화로 순교신앙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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