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리가 하나쯤 있었으면….’
100여 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그칠 줄 모르는 눈발과 함께 한파도 닥쳤다. 창밖으로 보는 세상은 눈으로 하얗게 덮여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갈 곳 없는 이, 소외된 이들의 아픔이 묻혀있다.
가려져 보이지 않은 곳에서 떨고 있는 이들의 추위를 나누기 위해 서울 가톨릭대학생 연합회(담당 김경식·이승민 신부·이하 서가대연) 대학생들이 나섰다. 소외된 이웃에게 나눠줄 목도리 뜨기를 시작한 것.
시작은 미미했다. 목도리를 제대로 뜰 줄 아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누구에게 뜨개질을 배워야 할지, 실은 어디에서 어떻게 구해야 할지, 그리고 실 값은 어떻게 충당할지도 막막했다. 11월말부터 시작된 목도리 뜨기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기말고사와 아르바이트 등으로 시간을 낼 수 있는 대학생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도리 뜨기 책임을 맡은 성주영(마리안나·22·덕성여대)씨를 비롯한 서가대연 회장 송종원(프란치스코 하비에르·21·고려대)씨와 연부용(마리아·21·서울시립대), 강혜미(클라라·22·이화여대), 강수언(요안나·21·항공대)씨 등의 노력으로 목도리 뜨기 운동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5000원, 1만원 씩 목도리 값을 후원해오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개인별·각 단위대별로 후원할 목도리를 모아 보내오는 손길도 이어졌다.
서가대연 대학생들은 모인 10만원 안팎의 후원금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실을 사기 위해 동대문 시장을 뒤지며 발품을 팔았다. 질 좋고 값 싼 자투리 실을 찾기 위해서다.
목도리를 뜨는 데는 장여희 수녀(테아·서가대연)의 도움이 컸다. 장 수녀는 학생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치고, 밤을 새가며 목도리 뜨기에 앞장섰다.
“수녀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많은 목도리를 뜰 수 없었을 거예요. 시험기간 끝나고 와보니, 수녀님이 목도리를 뜨고 계시더라고요. 바쁜 저희를 대신해 그 동안 목도리를 뜨셨대요.”
장 수녀의 보이지 않는 노력에 서가대연 청년들의 뜨개질 손이 빨라졌다. 쓰던 목도리나 장갑을 기증해오는 이들도 늘어나, 이제 제법 목도리가 쌓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만큼 모일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하지만, 청년들이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내놓아 사랑을 나눈다는 취지에 많은 친구들이 참여해줬어요. 별 것 아닌 일처럼 보여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여 추위에 떠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뜻 깊은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한 켠에서 말없이 뜨개질과 고군분투하던 송종원씨가 입을 열었다.
“뜨개질은 처음이에요. 제가 떠서 목도리에 구멍이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서툴긴 하지만 제가 뜬 이 목도리로 누군가가 조금 더 따뜻해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뿌듯해요.”
늦게나마 목도리 뜨기에 참여하게 됐다는 강혜미씨도 웃으며 말했다.
“목도리를 뜨는 기간은 1달이예요. 하지만 저의 작은 노력으로 이 목도리를 하게 될 누군가가 따뜻해 질 수 있는 시간은 훨씬 길잖아요. 그 생각을 하니,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겠더라고요.”
목도리 뜨기 열기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서가대연 목도리 뜨기방 문이 활짝 열리며, 김경식·이승민 신부와 서가대연 학생 몇몇이 목도리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여기 목도리 왔다~!”
‘목도리’란 소리에 서가대연 대학생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목도리가 완성되요. 이 목도리를 갖고 직접 거리로 나가 추위에 떨고 계신 분들의 목에 둘러드릴 거예요.”
※목도리 후원해주실 분 02-777-8249 서울 가톨릭대학생 연합회
■ 가톨릭대학생 연합회는
1954년 11월 창립해 올해로 57주년을 맞는 서울 가톨릭대학생 연합회(이하 서가대연)는 서울 지역 37개 대학의 가톨릭학생회가 모여 있는 동아리 연합체로, 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톨릭대학생들의 신앙공동체다. 전국 14개 교구가 연합한 전국가톨릭대학생협의회에 속해있으며, IMCS (International Movement of Catholic Student)의 아시아지부에 속해있다.
서가대연은 지난 57년의 역사 속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젊은 그리스도인으로 해야 할 사명에 충실해왔다. 대학생으로서 내적 신앙을 돌봄과 동시에 학교와 사회 그리고 교회 안에서 진리와 정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청년의 몫이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고, 현재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정의 실현과 이웃 사랑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54대 중앙일꾼(회장 송종원·프란치스코 하비에르·고려대)을 배출한 서가대연은 미사와 전례 등 기본 활동뿐만 아니라, 월별 주요행사 진행과 사회참여 활동도 벌이고 있다. 새내기한마당(4월)이나 여름농활(7월), 가대연의 날(11월) 등은 빼놓을 수 없는 서가대연의 연례행사다. 성경을 통한 일상교육과, 방학을 이용한 신앙학교도 운영한다. 2009년에는 용산참사 현장 미사에 참여하는 등 타 단체와의 연대 활동도 활발히 진행했다.
특히 이지넷문화공연·롤러코스터·사회교리 등 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어 정의와 진리를 지키려는 청년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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