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시작과 초기 역사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크게 두드러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은 평신도와 성직자의 유대 관계가 돈독하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 천주교회 초기 역사는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굳건한 유대관계가 그 이후의 다른 어느 시기보다 돋보였다. 평신도들은 자신들을 위해 복음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할 성직자의 영입과 보호를 위해 목숨의 위협을 마다하지 않았고, 또한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목하다가 목숨까지도 바쳤다.
하지만 박해 시대가 끝나고 서구의 성직자 중심적 교회 구조가 자리 잡게 되면서 평신도의 능동적 활동은 점차로 줄어들게 된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계로 이루는 성직자 중심적 교회 구조는 과거의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구조 속에서 큰 논란 없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8?15 해방 이후 우리 사회가 급격히 민주화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의식이 형성되고, 교회 내적으로는 평신도의 신원과 사명을 새롭게 자리매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성직자 중심적 교회상은 비판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의회의 촉구를 받아 교회와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평신도 지도자들과 일부 성직자들 또는 주교단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빚어지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런 긴장과 갈등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건설적인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만을 키워간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미 10여 년 전에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 관계의 현주소가 “성직이라는 카스트의 방어적 태도와 ‘내가 무엇이 아쉬워서?’라는 식의 지도적인 지성인 신도들의 냉소적 무관심”으로 양분되어 가고 있다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이런 주장이 힘을 받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교회는 사실상 내부적으로 분열되고 약화되어 교회 본래의 사명에 충실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초기에 있었던 성직자와 평신도간의 굳건한 유대 관계가 오늘날 변화된 상황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 ‘새로운 방식’에 대해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공의회 이후의 여러 문헌도 이에 대해 계속 언급하였다. 앞으로 이런 문헌들을 중심으로 교회 교도권이 제시하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 이 글은 가톨릭대 출판부의 「신학과 사상」 54호(2005년 겨울)에 실린 손희송 신부의 ‘교구 사제와 남녀 평신도’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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