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동료 형제로부터 ‘자리를 좀 지켜라’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수도자란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인데, ‘자기 자리를 지키라’는 말은 수도 생활 좀 제대로 하고 다니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김에, 그 형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 내용, 뭐 뻔하지요. “형제님, 너나 잘 하세요!”
감정이 가라앉은 후, 내가 왜 그렇게 분노를 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몇 달 동안의 기간을 회상해봤더니, 내 자신 스스로가 필요 이상의 역할을 혼자 떠맡으며 살았음을 보았습니다. 수도원에서 아무도 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삶’을 살라고 요구한 적이 없는데, 내 스스로 ‘수도원을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분주하게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알고보면 그런 삶을 살아가는 나를 모든 사람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나의 욕구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애써 모른 척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진정 소중한 역할, 즉 수도회 형제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삶, 바로 그것을 지나쳤던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기본은 함께 있는 이들과의 소통인데, 가까운 소통을 하지 못하면서, 거대한 소통에만 집착하며 몸부림을 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나에게 주입시켜온 많은 것들과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역할을 떠맡으면서, 거기에 철저히 나를 몰아가려고 했고, 심지어 내 소중한 형제가 나를 위해 정말 해 주고 싶었던 그 말 한마디에, 몸살을 앓듯 부르르 몸을 떨면서 분노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완벽한 삶을 살도록 강요한 일 없고, 아무도 나에게 헌신과 봉사를 요구한 일이 없었는데, 내 자신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 그런 삶을 살도록 내가 나를 몰아갔기에, 소중한 형제들의 말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좋은 일을 한다는 미명하에, 지나치게 분주히 외적으로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소통의 삶을 등한시 할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가장 좋은 사람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나와 함께 사는 이들과 마음 따스한 소통이 우선일 때 가능한 일입니다. 자기 자리를 잘 지켜나가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질 때, 그 눈은 보다 선명하고 분명하게 세상을 직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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