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신부와 우리 순교자들의 삶은 고통이었고 희생이었다. 하지만 그 거룩한 순교정신은 아직도 살아있어 교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자리한다. 김대건 신부와 순교자들의 부활하신 모습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 살아 계심을 우리는 믿는다. 신앙의 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인들은 너무 쉽게 세상을 살고, 신앙생활도 편하게 하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시대는 선조들의 순교 신앙을 퇴색시키고, 한국교회 신앙인들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 위치한 교구는 도시화의 물결로 세속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세속화 현상은 교구 내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물려받아 승화시켜야 할 순교 선혈들의 영성을 뒤흔들고 있다. 순교 성인들의 후예라고 하는 신자들이 이미 신앙 자체를 귀찮아하고 한낱 장식품으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할 때다.
내적 복음화의 완성을 위한 첫 걸음으로 교회는 퇴색해 가고 있는 순교자들의 영성을 재발견하고, 교구 내 신자들이 한국교회 초대 신앙인들의 모습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나아가 순교자들의 정체성을 교구의 정체성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순교자들이 혹독한 박해에서도 신앙을 유지하고 고통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었던 순교자들의 열정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이고 신뢰였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나 옛 순교자들처럼 피 흘리는 순교를 강요당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순교 영성을 오늘날 어떻게 생활화 할 수 있을까?
박해시절의 신앙 선조들처럼 목숨을 칼 아래 내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고 목숨까지 바칠 자세로 일상에서 순교자적 결단을 내리며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주의, 그리고 과학만능주의와 쾌락주의는 우리들에게 순교를 요구하고 있다. 바로 백색순교다.
신앙을 지키고 증거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훌륭한 순교자의 후손답게, 하느님과 예수님을 위해 신앙인으로서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순교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나를 끊어 버리고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순교하는 마음으로 살 때, 이런 작은 순교를 실천할 때, 그 삶이 바로 증거의 삶이며 순교의 삶일 것이다.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2008년 9월 순교자성월을 맞아 ‘외침’지에 기고한 글을 묵상하며 순교정신을 본받아야할 우리의 사명을 되새긴다.
‘많은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도 분명 피하실 수 있고 큰 명예를 누리실 수 있었지만 정말로 바보처럼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예수님께서 바보의 길을 가셨기 때문에 우리 순교 선조들도 바보 되는 길을 예수님께 배워 그 길을 걸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참으로 신앙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바보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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