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전까지만 해도 교회 안에는 성직자 중심적 교회관이 지배적이었다. 20세기 초 독일의 교회법학자인 슈투츠는 이렇게 주장한다. “가톨릭교회는 성직자들의 교회다” “평신도들은 단지 지도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백성일 뿐이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렇게 선언한다. “하느님 백성에 관하여 말한 모든 것은 평신도·수도자·성직자들에게 똑같이 해당된다(교회 30)”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지체들의 품위도 같고, 자녀의 은총도 같고, 완덕의 소명도 같으며, 구원도 하나, 희망도 하나이며, 사랑도 갈라지지 않는다(교회 32)”.
이렇게 하느님 백성 구성원 모두는 세례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됨으로써 공통된 품위를 지니고 평등하게 활동하게 된다. 즉 성직자만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품위를 지닌다.
이러한 가르침은 신약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신약성경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 모두가 사제’라는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 2장 9절은 탈출기 19장 6절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이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렇게 세례를 통해 모든 신자들은 사제적 백성이 되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게 된다. 세례받은 신자들 모두는 자신의 삶을 영적 제물로 하느님께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1베드 2,5)인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런 내용을 수용하여 신자들이 세례성사를 통해 보편 사제직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른 한편 세례받은 이들을 ‘임금의 사제단’이라고 표현한 베드로의 첫째 편지는 공동체를 지도하는 목자의 직무를 인정하였다(1베드 5,2-3 참조). 따라서 모든 백성이 사제라는 사상이 필연적으로 교회 내 목자의 직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성서적 근거에서 처음부터 목자의 직무를 인정해 왔다. “신자들 가운데서 성품에 오르는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교회를 사목하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진다.”(교회 11)
이렇게 성품성사를 통해 목자의 직무를 맡은 이들은 보편 사제직과는 구분되는 ‘새로운’(사제의 직무와 생활지침 6) 사제직, 즉 직무 사제직을 부여 받는다.
성품성사를 받은 사람에게 보편 사제직과는 구별되는 다른 종류의 사제직이 부여된다면, 과연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 이 글은 가톨릭대 출판부의 「신학과 사상」 54호(2005년 겨울)에 실린 손희송 신부의 ‘교구 사제와 남녀 평신도’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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