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김운회 루카 주교님을 처음 뵈었던 때는 지금부터 37년 전 1973년, KYCS-Cell(가톨릭 중고등학생 연합회)을 돌봐주셨을 때 입니다.
그때 주교님께서는 서울에 있는 학교에 일일이 방문하셔서 Cell이 학교에서도 복음전파와 종교 활동이 뿌리 내리도록 학생 개인 개인에게 영성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방황할 수 있는 10대들에게 대화의 시간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갓 사제가 되시어 풋사과처럼 풋풋한 향기로 많은 애정을 가지시고 사목을 하셨던 시기와 꿈 많고 고민도 많았던 여고시절이 맞물려 그 당시에 우리 학생들은 주교님을 참 많이도 힘들게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민거리를 말씀드리면 명쾌하고도 여유로우신 화법으로 저희들 마음을 잘 녹여 주셨고, 그로 인해 주교님과 엿처럼 끈적끈적한 정이 쌓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학에 와서도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지도 신부님으로 또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주교님의 늘 따스하고 온화한 미소와 재치와 유머가 넘치시는 말씀은 대학생들에게 언제나 인기가 최고였으며 당시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대에 정신적인 지주가 되셨습니다. 연합회의 일들이 많아 늦게까지 일을 할 때면 학교(동성고등학교 교사시절)에서 월급을 타셨다며 주머니를 털어서 간식을 사 주시곤 하였습니다(그 당시에는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은 대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제가 생일날이라고 하였더니 주교님께서는 책방에 가셔서 그 당시 베스트셀러인 ‘노란손수건’이라는 책을 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목활동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시는데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일에도 눈길을 주시는 그 모습에서 하느님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한 남편 요셉과 저는 주교님의 주례로 혼인을 하였고 아이들을 낳을 때마다 세례를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저희 부부는 기회가 생길 때 마다 주교님과 많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주교님께서 계시는 소성당에서의 가족 미사는 개구쟁이 아이들에게도 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늦가을 동숭동 사제관 앞뜰에 저마다 자신의 모습을 뽐내며 잘 익은 감을 긴 막대로 따서 아이들은 주교님께 자랑스럽게 드리기도 하였고, 어느 해 한겨울 눈썰매를 처음 타보신다며 눈썰매 튜브를 들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에서 해맑고 순수하신 면과 막연히 스쳐지나가는 큰 분의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또 과다한 일로 인해 대상포진에 걸리 신 것도 모르시고 어깨가 아프다며 혼자서 못 붙이시겠다며 파스를 붙여 달라고 말씀하셨을 땐 눈물이 핑 돌기도 하였습니다.
새해가 되어 덕담으로 하신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1년 동안 그 말씀을 되새기며 계획을 세울 때는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수많은 사연을 담아 보내 온 성탄카드와 신년 연하장이 온 방안에 도배된 것을 볼 때면 하늘을 찌르는 주교님의 인기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비유를 들어서 풀어내시는 이야기 보따리가 끝이 없으신 주교님께서는 사람들과 격의없이 늘 친밀감을 가지고 사제생활을 잘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세계 여러 나라의 특징이 담긴 열쇠고리를 취미로 모으셨는데 아끼고 추억이 묻어 있는 그 많은 열쇠고리를 불우이웃 바자회에 아낌없이 몽땅 내 놓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당신의 것을필요한 곳에 미련 없이 내놓으시는 모습을 자주 뵙곤 하였습니다.
40여 년 동안 주교님께서는 시골 앞마을의 고목나무처럼 저희 부부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셨고 언제라도 달려가면 고향의 어머님 품 속처럼 포근하게 안아주시는 분이셨습니다.
2010년 1월 29일부로 춘천교구장으로 임명되신 주교님의 영육간에 건강을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김운회 루카 춘천교구장님의 영원한 제자 안태식 요셉·함윤희 마리아 부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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