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수도자와 신학생을 상담했던 일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수도회에서도 살았고, 신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학년이 되었는데, 무척이나 갈등이 심해 보였습니다.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 인간적인 유혹 등 살면서 겪는 것들이야 다 그렇다 치고, 마음 속에 뭔가 있는데 말을 하지 않아 서로 답답해하면서 상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수도회를 떠나고 신학교를 그만 둔 후에 찾아와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이제 내 인생은 내가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부모의 바람대로 세상을 살지 않겠다며, 자기 인생 자기가 살고 싶다며, 수도회와 신학교를 떠났습니다. 지금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 때 유행어처럼 등장했던 단어가 ‘마마 보이’였습니다. 그런데 ‘마마 보이’는 ‘마마 보이’로 만든 그 엄마가 문제일까, 아니면 아직도 ‘마마 보이’로 남아 있는 그 ‘마마 보이’가 문제일까! 하지만 그것을 ‘문제’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자체로 아프거든요.
저는 여자가 아니라서 아이를 낳을 때, 어떤 아픔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들어온 상식으로는 엄마의 몸에서 아이가 나올 때의 그 진통이 너무 크다는 것! 하지만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탯줄을 끊습니다. 탯줄을 끊는다는 것! 그렇습니다. 인간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탯줄을 통해 생명, 그 자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결은 아이가 엄마 뱃속에 나온 순간,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세상에 고유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체적인 탯줄은 잘 끊으면서 주변에 보면 많은 분들이 정서적인 탯줄은 꼭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서적인 탯줄을 꼭 쥐고 있는 분들의 마음들을 보면 그 안에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깊이 연관되어 있는 듯합니다. 정서적인 탯줄을 끊으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끊어질 것 같은 두려움의 ‘거부감’! 사실 사람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정서 중에 하나가 바로 ‘거부감’인데, 그 감정으로 인해 정서적인 탯줄을 끊지 못한 채, 서로가 서로를 놓아주지 못하고, 세상 안에서 정서적인 존재로 올바로 설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러다 보니 부모는 자녀에게 “우리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아니?”하며 위협을 주고, 이 말을 들은 자녀는 마음 가득 죄책감과 불안함으로 유기 불안에 따른 정서적 정체감 상실을 갖고 살아가곤 합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오늘 따라 문득, 엄마와 정서적인 탯줄을 끊는데 50년이 걸린 한 남자의 절규가 생각이 납니다. “이젠 나대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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