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망즈 주교는 또다시 사목방문을 떠난다. 이번에는 문산, 영호, 신월, 거제도(명진공소) 등 경상도 지방이다. 성사집행을 다니던 중 함께하던 줄리앙 신부의 소변에는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드망즈 주교는 ‘심한 바람 속 바닷가 20리 길을 말을 타고 갔다. 파도가 너무 거칠어서 사공들은 우리를 건너주려 하지 않았다’라고 쓰고 있다. 일기에는 이질과 같은 질병, 거친 날씨 등 당시 선교사들이 겪던 어려움이 고스란히 나타나있다.
1913년 9월 25~26일
얼마 전 예고했던 대로 남만주교구 부주교인 라마스 신부가 그의 형 부부와 함께 오늘 저녁 도착했다. 라마스 신부는 우리 집에 묵을 것이고, 그의 동행인들은 일본 호텔에 묵을 것이다.
24시간 머물러 있는 동안, 그들 모두는 주교관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26일, 우리 손님들이 다시 떠났다. 그들은 빗속의 대구밖에 보지 못했다.
10월 19~20일
전보로 통지를 받고 나는 카넬 신부에게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떠났다. 교구에 혼자 있었고, 그에게 내 출발을 알리기 위해 하인을 찾는데 시간이 걸려, 나는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소세 신부와 6시30분 기차를 탔다. 우리는 저녁 11시 마산본당에 도착했다. 카넬 신부는 아주 심한 이질에 걸려 있어 급히 그를 대구로 옮겨야 했다. 하인들의 방에서 자는 동안, 이가 들끓었다.
20일, 여행은 고달팠다. 나는 ‘급행열차로 도착. 입원을 준비하시오. 곧장 데리고 갈 것임’이라는 전보를 쳤다. 환자는 10분을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을 피로 적시러 갔다. 순경이 이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섭리였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순경은 우리가 여행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대구역에 내리니 신부들이 병원에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환자를 교구로 데리고 갔고, 즉시 의사를 부르러 페랑 신부를 보냈다.
마침 한 일본인 의사가 병의 종류에 관해 순경을 속여 환자를 그의 병원에 수용하는데 동의했다. 상황은 아주 심각했다. 만약 신부를 옮길 수 없었다면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11월 14~18일
나는 아침 기차로 대구를 떠나 삼랑진에서 줄리앙 신부와 합류, 마산포에 도착했다. 16일, 우리는 문산에서 묵었다. 문산은 소촌의 새 이름이다. 이제부터는 그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70리 길을 떠났다. 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 때 삼가면 영호 옹기마을에 도착했다. 영호공소에서는 성사집전을 했다. 좋은 마을이다. 남편이 순교자였고, 한국에 신부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40년 이상을 살아온 섬 출신의 이 할머니는 옹기마을에서 몇 년 전 천주교 물건들을 보고 교회로 돌아왔다.
그녀는 다블뤼 주교로부터 견진성사를 받은 이후 처음 성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회개한 이래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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