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하나되게 하소서.’ 장익 주교는 분단교구인 춘천교구가 가족, 이웃, 사회 전체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이 시대의 요청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목표어를 ‘모두가 하나되게 하소서’로 정했다.
- ‘고향이 따로 있느냐, 깃들어 살면 그곳이 고향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16년 전, 춘천교구장으로 부임해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이곳에 뼈를 묻으러 온 사람’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16년간,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맙고, 다른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짐을 벗었다는 느낌이 아닙니다. 훌륭한 새 목자가 오셨으니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떠납니다.
▲ 16년 전과 후 춘천교구는 어떻게 달라졌는지요. 그동안 춘천교구를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 16년 전 춘천교구는 개척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사목자들의 노력 덕분에 춘천교구가 태어났고, 그 기반 위에 교구의 기틀을 잡아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성과에 대해서는 제가 평가할 일이 아니지만, 조금 더 체계적으로 지역 사회와 교회에 봉사하는 모양을 갖춰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난 16년간 한국사회에는 상당히 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신자를 비롯한 지역 사회 모두가 합심했기 때문에, 춘천교구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사목표어가 ‘하나되게 하소서’입니다. 어떠한 염원을 담으셨는지요. 유일한 분단교구인 춘천교구의 현실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당연히 분단교구에 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춘천교구 관할도를 보면, 휴전선 이남보다 이북이 차지하는 면적이 훨씬 넓습니다. 북강원도 지역이지요. 우리나라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안고 있는 교구가 바로 춘천교구인 것입니다. 남북 분단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안에 여러 가지 대립과 갈등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국가는 발전하고 성장했지만, 진통이 따릅니다. 치유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시대입니다. 예수님의 염원 중의 염원이 ‘모두가 하나되게 하소서’였습니다. 가족, 이웃, 사회 전체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이 시대의 절박한 요청이라고 깨달았고, 그 뜻을 담아 사목표어로 정했습니다.
▲ 한국 유일 분단교구로서, 북강원도의 자활을 돕는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쳐오셨습니다. 대북 지원 사업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더 많이 가진 우리가 북한에 베풀어준다는 시혜의 뜻으로 북녘동포들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나’와 ‘너’를 갈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같은 몸입니다. 무엇을 해주고 생색을 낼 일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남북 이념의 차이나 정세에 따라 영향을 받을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우리 동포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꾸준히 대북 지원 사업을 전개해왔습니다. ‘한솥밥한식구 운동’을 펼쳤고, 교구 내에 한삶위원회를 꾸려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북강원도 지역에 연탄을 전달했습니다. 그동안 60만 장의 연탄을 지원했지만, 결코 많은 것이 아닙니다. 함흥교구장 서리도 겸하고 있지만, 그냥 마음으로 기도만 하는 것은 부족하다 생각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힘 닿는 데로 노력해야 합니다.
▲ 소공동체운동, 성경사목에도 관심이 많으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소공동체 운동과 성경사목의 중요성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근래에 와서 한국교회는 소공동체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든지 그 구성원 하나하나가 세포로서 살아있을 때, 몸 전체가 성한 것입니다. 규모가 작으니 어울리기 쉽다는 단순한 측면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각하고 온 맘을 다해 매진할 때 교회가 산다는 생각으로 소공동체에 접근해야 합니다.
성경사목에도 중점을 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사는 것이 바로 성경사도직입니다. 말씀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 최근 교구의 직제를 다양하게 개편하셨습니다. 경로사목소위원회, 문화사목소위원회, 성경사목부를 신설하셨고, 장기적으로 모든 신자가 청소년지도사 자격증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도록 ‘사목분야별 전문과정 이수’도 마련하셨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조직을 신설하고 직제를 개편한 배경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 먼저 문화사목소위원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일제치하에서 고통 받고,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엄청난 문화적 단절, 혼미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정체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교회도 사회 전반, 특히 문화에 끼치는 영향과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문인, 미술가, 음악가 등 창작생활을 하는 예술가들이 성숙한 나이에 이르러 많은 고민 끝에 신앙을 찾습니다. 대중에 휩쓸리지 않는 그분들이 소리 없이 교회의 궁극적인 지향점에 동참하고 귀의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뜻있는 현상입니다. 그만큼 교회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큽니다. 이에 책임감을 갖고, 교회도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춘천교구 내에서의 고령화 속도는 더욱 빠릅니다. 그래서 경로사목소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교구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연로한 어르신들께 시혜적으로 무엇인가 해 드리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분들도 사회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구성원입니다. 스스로 주역이 돼 능동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나가도록 돕자는 취지입니다.
사목분야별 전문과정 이수제도는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굉장히 세분화, 전문화 돼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목자가 책임 있는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보다 더 깊이 있게 알고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격증을 통해 어떤 위치에 도달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문성을 갖고 사제로서의 소임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16년간 목자로 봉직해오시면서 중점사목 방향이 있으셨는지요. 한국교회에는 어떠한 비전이 필요한지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습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습니다. 사회 안에서의 위상도 높아졌고, 양적으로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고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교회가 내실을 기해야 할 때입니다. 속살을 찌워야 합니다. 참되게 살아야 합니다. 외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안으로 알차고 진실하게 사는 그런 공동체가 될 때에, 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안으로의 화합과 진실성, 그것이 우리 교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입니다.
▲ 지역사회를 비롯한 한국사회 전체에 갈등이 심각합니다.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임해야 이런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뉴스나 신문을 보면 우리사회에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갈등과 대립이 넘쳐나고, 온갖 상처가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을 혼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이점을 강조하거나, 내 입장과 권익을 너무 내세워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지양하고, 이쪽 저쪽 편가르기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는 것도 멈추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노력하며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 그동안 교구장님을 위해 기도해왔던 모든 춘천교구민과 지역 사회 주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제가 강원도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겉으로 보면 투박해 보이지만 속정이 깊습니다. 강원도 사람들에겐 진실성이 있습니다.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그게 참 좋습니다. 춘천 시내를 다니다 만난 신자분들은 정말 순수하고 꾸밈없는 마음으로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그것이 저의 보람이고 행복이었습니다. 미흡했던 점이 많았습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우리 교구의 사제단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도 항상 뜻을 같이 해주고, 좋은 마음으로 협력해준데 대해 감사합니다.
▲ 은퇴 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 제가 강원도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강원도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남은 여생을 춘천 언저리에서 보내려 합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인 그 춘천교구 곁에서 밭을 일굴까 합니다. 몸이 허락한다면 좋아하던 산에도 다녀보고 싶습니다. 여유가 된다면 고전을 읽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주어진 인생을 아름답게 일궈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