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20대 중반의 여성을 알게 된 일이 있습니다.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청년의 여자 친구였습니다. 그녀는 성격이 밝고 명랑했으며, 어학 실력도 뛰어났습니다. 특히 주어진 처지가 어떠하건 간에,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이었습니다. 나는 이 아가씨가 청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가끔 함께 만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저 아가씨는 참 좋은 가정환경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여성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함께 만나던 자리에서 청년이 잠깐 자리를 비우게 되어 단 둘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아가씨는 나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생이별, 청소년 시절에 젊은 새 어머니와의 심각한 마찰,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언제나 혼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상황…. 힘들게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 자체도 무척이나 놀랐지만, 그 모든 상황을 차분하게 말하는 그 아가씨의 모습이 더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말이 어찌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지!
“신부님. 저는 신앙이 없어요. 신(神)이 있다는 것은 믿지만…. 그런데 나를 지금까지 있게한 놀라운 힘은 알아요.” 그 아가씨는 신앙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건강한 숙녀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어릴 때부터 자신의 그런 환경을 다 알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늘 그 아가씨에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내가 늘 너랑 함께할게!”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진심 어린 말을 듣고 자랐던 그 아가씨는 인생의 고비에서나 혹은 막 살고 싶은 그런 충동이 들 때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자기 마음속에서 울려 나왔다고 합니다.
“신부님, 할머니의 그 진심 어린 말씀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전 없었을 겁니다. 어릴 때에는 그 말씀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지만, 살면서 큰 절망이나 좌절이 들 때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히 들리는 것이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그리고는 늘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말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하면서, 오히려 더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자신의 마음과 진심을 담은 말 한 마디를 건네줄 때, 그렇게 건네 준 사람이 그 말처럼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는 놀라운 공감의 힘을 느낍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 뭐 그다지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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