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7일 오후 5시. 이제 막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된 이기헌 주교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의 임명소감은 이러하다.
“부족한 사람을 뽑으셔서 두려움이 앞섭니다. 하느님께 매달려 도움을 구하고, 교구 사제, 협력자들과 함께 부족함을 채워 주님의 뜻에 가까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2010년 2월 27일 오후 2시. 용산 군종교구청에서는 의정부교구장으로 임명된 이기헌 주교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제와 신자들을 사랑하고 손잡고 일치하며, 부족함을 채워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영적 친교 안에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주교의 소신은 변하지 않았다.
- 의정부교구장이 되신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 떠나야 한다는 것은 항상 아쉽고 미안한 일입니다. 정들었던 군종교구의 사제와 신자들을 훌쩍 떠난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지만 모두 잘 해주시리라 생각하고, 저는 또 의정부교구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협력과 기도를 통해 열심히 초석을 다져야겠지요. 의정부교구는 크고 발전해가는 교구입니다. 열심히 신부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의정부 교구장 임명이 발표된 날(26일)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 26일 오후 8시 저는 영천 3사관학교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득 찬 젊은 생도들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지나간 10년이란 세월동안 이 젊은이들과 동고동락했구나, 나도 젊어졌구나, 행복했구나’라는 생각들입니다. 군종교구장으로 일하며 젊은이들의 ‘젊음’을 간접적으로라도 많이 느꼈습니다.
- 의정부교구는 군부대와 군종교구 본당·공소들이 많은 교구입니다.
▲ 군종사목을 하며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의정부교구에도 군종교구에도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목적 판단과 방안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선 여러 신부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양쪽 교구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겠죠.
- 의정부교구는 접경지역에 인접해있어 ‘민족화해와 일치의 교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정부교구를 바라다보며 생긴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으시다면.
▲ 예전 서울 민족화해위원회 실무자 책임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생각을 아직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의정부교구의 젊은 사제들과 소통해나갈 것입니다. 위치나 지형적으로 처한 여러 가지 의미들을 생각해보고, 민족화해와 관련해 해야 할 일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민족화해에 관심을 갖고 감각을 가진 사제들이 의정부교구에서 많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삼아 세계정세를 바라다보며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찾아갈 것입니다.
북녘교회 신자들에게는 ‘하느님께서는 큰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며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용기를 잃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신앙적 지원이나 기도 등을 아끼지 않고 있으니 힘을 내시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군종교구장으로 계시면서 해오신 군사목에 대해 감회가 많으실 듯합니다.
▲ 그동안 우리는 마음을 모았고, 열정을 기울이고 한 마음이 되어 선교했습니다. 지난해에는 교구 설정 20주년을 맞아 여러 선교의 결실도 맺은 것 같습니다. 육군훈련소 김대건 성당과 공군 교육사 비성대 성당, 해병대 훈련소 요람 성당 등 하느님께서 큰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이것이 군선교의 중요성을 알리는 ‘외적선물’이라면, 이것을 계기로 앞으로는 영적발전과 성장의 폭을 넓히자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군종교구 성당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자 더 열심히 하라는 하나의 암시일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많은 사랑도 받았고 친근하게 지냈습니다. 사제는 물론 신자들도 ‘군인이면서 신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신앙적으로 더욱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통해 큰 기쁨과 위안을 찾는 신자가 되길 바랍니다.
- 외국인근로자와 다문화여성, 청소년 등 여러 사목에 있어서 앞으로 의정부교구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교구의 특징도 있지만, 사제로 35년간 살아오시면서 주교님의 변하지 않는 지향점이 있으시다면 무엇이 있으신가요?
▲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제를 사랑하고 신자를 사랑하며 다함께 손잡고 일치하는 것’일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영적 친교 안에서 서로 손 잡고 나아갈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근본적 신앙문제입니다. 신자들의 신앙이 다져지는 본당사목을 핵심으로 두고 청소년, 청년, 외국인 근로자, 민족화해 등 다양한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와 하느님의 관계가 깊어질 수 있도록 격려해가는 교회공동체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기헌 주교 약력
▲1947년 12월 31일 평양 출생 ▲73년 2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졸업 ▲75년 12월 8일 사제 수품 ▲75년 12월 서울대교구 천호동본당 보좌 ▲76년 6월 서울대교구 상봉동본당 보좌 ▲77년 1월 서울대교구 명동 주교좌성당 보좌 ▲78년 8월 육군 군종 장교 임관 ▲78년 8월~1982년 8월 육군 제21사단 군종 신부 ▲82년 9월 서울대교구 잠원동본당 주임 ▲87년 9월 서울대교구 석관동본당 주임 ▲90년 5월 동경 한인 천주교회 주임 ▲95년 9월 서울대교구 교육국장 ▲98년 9월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99년 10월 29일 군종교구장 임명 ▲99년 12월 14일 주교 수품 ▲99년 12월 15일 제2대 군종교구장 착좌 ▲2000년 3월 30일~2005년 10월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보건사목 담당 겸임) ▲2000년 3월 30일~현재 주교회의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 ▲2003년 3월 25일~2005년 10월 주교회의 생명31 운동본부 책임 주교 ▲2003년 5월 19일~2004년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제8차 정기총회 담당 주교 ▲2005년 10월~현재 주교회의 문화위원회 위원장 ▲2009년 10월 13일~현재 주교회의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장 ▲2010년 2월 26일 의정부교구장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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