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님은 점잖으신가요?
평택 비전동 성체성혈성당은 작년에 15주년을 보내고 지난 가을에 4번째 본당신부님으로 젊고 열정적인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신부님은 신자들의 영성생활 활성화를 위해 새마음 새기운을 불어넣으시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시고, 신자들의 호응과 참여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신자 분들이 쉽게 움직이지 않고 자기방식의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성당에는 저를 포함해서 ‘점잖은’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다른 종교인들에 비해 ‘점잖다’는 평을 받습니다.
사전에서 ‘점잖다’는 뜻은 ‘언행이 묵중하고 야하지 아니하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선비를 존경하였고, 수신제가를 이룬 후에야 남을 이끌고 나라를 생각하며, 벼가 익을수록 머리를 숙이듯이 매사에 신중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대인관계를 중요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점잖다’는 말의 긍정적인 면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10여 년을 같은 성당에 다니면서도 다른 사람이 소개해서 수인사를 하기 전에는 함부로 아는 척 하지 않거나 ‘점잖게’ 목례나 하는 정도이고, 이웃이 교회에 안 나와도 그런 것은 자기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할 일이지 ‘점잖지 못하게’ 내가 남의 일에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봉사자로 일해 달라고 어렵게 부탁을 드려도, 내가 아는 게 별로 없고 신심이 부족한데 어떻게 봉사자로 나서겠느냐고 ‘점잖게’ 거절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고,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신자들로서는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이웃은 누구일까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 다친 사람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가족, 우리 반 식구, 우리 구역 식구, 우리 교회 신자들이 바로 이웃이겠지요.
내가 충실하고 속이 차서 넘칠 때 이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부족하더라도 나름대로 이웃을 돕고, 내가 부족하더라도 봉사자로 나서서 궂은 일을 맡아하고, 내가 부족하더라도 교회 밖의 불쌍한 사람들까지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경인년 새해의 사순절을 맞아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고, 금년에는 ‘점잖으면서도’ 가슴을 열어 이웃을 사랑하는 봉사자가 넘치고, 모든 신자들이 함께하는 사랑의 성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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