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선고공판이 열린 2월 25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는 누구 못지 않게 졸이는 가슴을 안고 판결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있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손에 노모와 아내, 4대 독자 등 온 가족을 잃고서도 그를 위한 탄원서를 내 세간을 놀라게 했던 고정원(루치아노·68)씨가 주인공.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 고씨는 숨죽인 탄식과 함께 얼굴을 떨어뜨렸다. 다시 고개를 든 그의 눈가는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번 판결은 또 한 번 저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헌재의 선고 일정이 잡힌 이후 줄곧 가슴을 졸여왔다는 그는 착잡하다는 말로 심정을 토로했다.
“제 가족이 죽었을 때도 누구 하나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가 간절히 바랐던 바는 깡그리 무시됐습니다.”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그 일’에 용서와 사랑의 기억을 덧씌워 새 희망을 찾으려 노력해온 고씨에게 판결은 또 한 번의 치명타가 되고 말았다.
“용서를 통해 한평생을 몸의 한 부분처럼 지녀온 생각조차 사랑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무엇이 두려워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걸 꺼리는 걸까요.”
자신이 체험한 가슴 벅찬 감동을 나누고자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행사나 모임이면 어김없이 참석해왔다는 고씨는 지금도 범죄피해자가족 자조모임에 함께하고 있다.
“가해자의 죽음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아픔을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제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지 않은 채 인과응보, 법 감정 운운하는 것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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