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과 손짓은 말보다 크게 다가왔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마음에 내려앉아 순식간에 ‘사랑’이 됐다.
▧ 큰아들과 작은아들
“저는 수원교구 농아선교회에 초대 받아 왔습니다.”
말이 아니다. 몸짓과 손짓이다. 박민서 신부(서울대교구 청각언어장애인사목 전담)는 교구 농아선교회 사순피정 미사에서 이렇게 인사했다. 신자들이 금세 알아듣고 박수를 치고 수화로 크게 화답했다.
“환영합니다.”
박 신부가 수원교구 농아선교회 피정에 초대돼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3월 14일 주일, 오늘 미사의 복음말씀은 ‘루카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이다.
몸짓과 손짓 하나에 하느님의 말씀이 새겨진다. 말이었다면 그냥 지나가버렸을 복음의 한 단어가 하나씩 마음에 그대로 와 꽂힌다. 눈을 뗄 수 없다.
강론 시간이 되자 박 신부가 청각장애 신자들에게 복음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시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되짚어간다. 신자들의 눈도 열심히 손가락을 따른다.
“큰아들은 아버지 말씀을 듣고 잘 살았지만, 작은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기 시작했어요. 유혹을 못 이겨 돈을 다 써버렸어요. 작은아들은 돈이 다 떨어지자 돼지우리에서 일하며 돼지가 먹는 것을 먹었어요.”
박 신부가 ‘유혹’을 설명하기 위해 여성이 유혹하는 흉내를 내자 신자들의 웃음보가 한바탕 터졌다. 할머니들은 박수를 치고 똑같이 따라 해보기도 한다. 돼지가 먹는 것을 흉내 내자 이번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열정적인 사순피정이다.''
돌아온 탕자
박민서 신부는 큰아들은 바이사리와 율법학자들과 같다고 했다. ‘나는 참 바르고 법도 잘 지키는 사람이야’라며 스스로를 자랑했던 것이다. 작은아들은 죄를 지었지만 아버지에게 돌아왔다.
“여러분은 큰아들이십니까? 작은아들이십니까? 손을 들어보세요.”
번쩍번쩍 손이 들린다. 큰아들, 작은아들, 하느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우리는 자신 뜻대로 살아요.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을 다시 찾으면 그분은 반갑게 안아주시고 뽀뽀도 해주시고 먹을 것도 주실 거예요.”
박민서 신부가 오기 전, 신자들은 자체 피정을 했지만 많은 이들이 ‘피정’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신부가 오고 신자들은 ‘주님께 가까이 가는 느낌이 든다’고 전한다.
신자들은 이제 ‘부활’이 가까워왔음을 안다. 길지만 어느 미사보다 값진 시간이 끝났다. ‘부활’과 함께 신자들에게 귀한 손님이 또 찾아왔다. ‘내 귀에 하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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