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는 생명 수호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구체적인 실천 노력들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한국 주교단은 총회 폐막에 이어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인간생명뿐 아니라 환경을 훼손하는 정책 추진과 관련해 한국교회의 입장을 표명, 우리 사회 전체가 ‘생명’을 선택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2000년대 들어 대사회적 문제에 대해 한국 주교단이 공동으로 교회 입장을 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 자연과 인간생명 수호를 위한 구체적인 태도 표명
주교회의는 2010년 봄 정기총회 폐막 다음날인 3월 12일 오전 10시30분 서울시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졸속 추진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관해 한국 주교단 명의로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현재 진행 중인 경솔한 개발 정책은 자연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그 폐해가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지워질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우려한 주교단은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22)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그 의지를 대사회적으로 천명했다.
이에 앞서 주교단은 정기총회 시작일인 8일 4대강 살리기 사업 정부 담당자를 초청, 설명회를 열고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 측 입장과 반대 입장 등을 형평성 있게 수렴한 바 있다. 아울러 4대강 사업 추진 및 반대에 관한 내용을 총회 특별 안건으로 숙의했다.
현재 교회 내에서는 각 교구 정의평화위와 환경사목위, 우리농본부 등으로 구성된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를 중심으로 범교구 차원의 사업 저지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8일에는 전국 사제 1100명 명의의 선언문도 발표된 바 있다.
이와 함께 주교회의는 조만간 환경 수호와 무분별한 개발의 문제점, 지속가능한 발전 등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총체적으로 담은 「환경백서」(가칭)도 펴낼 예정이다.
아울러 이번 총회에서는 전국 각 교구와 본당 산하 생명위원회 설치도 승인됐다. 이에 따라 각 교구와 본당·신자간 네트워크가 구축, 보다 조직적이고 실질적인 생명 수호 운동을 이어가는데 힘을 얻을 전망이다.
생명위원회 설치는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생명운동본부의 건의로 이뤄졌다. 또 주교회의는 생명운동본부가 한국 평협·가톨릭여성협의회·레지오마리애와 협력해 대사회 생명운동과 오는 7월 꽃동네에서 여는 전국 생명대회를 준비할 것을 승인했다.
- 통합 시복추진 공식 선언
이번 총회에서는 ‘한국교회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조사’를 통합 추진할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선언문을 확인하고 승인했다.
이에 앞서 전국 각 교구장들은 통합 추진을 위해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에게 시복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위임했으며, 정 추기경은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주교에게 권한을 재위임했다.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는 1901년 제주교난 순교자들과 한국전쟁 전후에 공산당의 박해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 그 밖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이 포함된다. 주교회의는 지난해 가을 정기총회에서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의 2차 시복 작업과 ‘한국교회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조사’도 한국교회 차원에서 통합 추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실무 또한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맡아 진행하기로 합의했었다.
- 국제 행사 잇달아 한국에서 열려
각종 국제행사가 한국에서 연이어 열려, 한국교회의 성장 면모를 보편교회에 알리고 복음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를 오는 2013년 대전교구에서 열기로 최종 결정했다.
주교회의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의 요청으로 지난해 가을 정기총회에서 제6회 대회를 한국에서 열기로 승인했었다. 또 한·일 주교 교류모임을 오는 11월 16~18일 청주교구에서 마련키로 했다. 이어 이번 회의에서는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주최로 오는 8월 31일~9월 5일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 평신도 대회’ 준비 상황에 대한 보고도 들었다.
이 밖에도 주교회의는 교리교육위원회가 제출한 ‘청년 교리서’(시안) 제5권 ‘표징 속에 담긴 구원의 신비’ 출판을 승인했다. 청년 교리서는 총 7권으로 기획된 시리즈다.
주교회의는 변경된 주교회의의 직책을 수정하고 재정에 관한 조항 등을 포함한 ‘한국 주교회의 정관’ 개정안도 이번 회의에서 승인했다. 이 정관은 추후 사도좌의 추인을 받을 예정이다. 아울러 각 교구와 수도회가 사용할 통일된 서식도 승인했다. 이로써 앞으로 교구와 수도회간의 소통이 더욱 긴밀해지고, 지속적인 협력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 주교위원회·전국위원회 위원장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 : 최기산 주교
▲교리주교위원회 위원장 : 김희중 대주교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 김운회 주교
▲교육위원회 위원장 : 최기산 주교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 이병호 주교 (해외이주사목위원장 겸임)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 : 조규만 주교
▲전례위원회 위원장 : 김종수 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 이용훈 주교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 이기헌 주교 (문화위원장 겸임)
한국 주교단 4대강 사업 관련 입장 (요지)
“참된 발전 이루려면 ‘생명’ 선택이 우선”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22)
1960년대 이후 이 나라 정부는 단기간의 경제개발 효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겨냥하며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였고, 1973년에는 낙태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도입하였습니다. 그 이후 가톨릭교회는 거의 해마다 이런 반생명적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하여 왔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 사람들 중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반생명적인 문화가 무겁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 사회가 참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명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생명을 발전의 수단으로 삼고 파괴하는 행위는 자연환경에 대해서도 똑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연 생명이 파괴되면 그 자연을 호흡하고 섭취하며 살아가는 인간 생명도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습니다.
춘계 총회에 모인 한국 천주교의 모든 주교들은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전역의 자연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 실무진의 설명을 들어보았지만,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인 합의 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며 수많은 굴삭기를 동원하여 한꺼번에 왜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욕심으로 인한 경솔한 개발의 폐해가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지워질 때, 이 시대의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무분별한 개발로 단기간에 눈앞의 이익을 얻으려다가 창조주께서 몇 만 년을 두고 가꾸어 오신 소중한 작품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성찰과 회개를 촉구하며, 정부 당국자들과 국민 모두가 우리 자신과 미래의 세대에게 책임 있고 양심적인 길을 택할 수 있기를 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일찍부터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보아라.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을 너희 앞에 내놓는다.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너희나 후손이 잘 되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신명 30,15·19).
2010년 3월 12일 한국 천주교 주교단
2010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 주요 결정사항·의미
생명·환경 훼손 막을 구체적 노력 촉구
교구·본당 산하 생명위 설치 승인 … 환경백서 편찬도
4대강 사업 설명회 통해 정부측-반대 입장 의견 수렴
근·현대 순교자·신앙 증거자 시복조사 통합 추진키로
2013년 아시아 청년대회 개최 등 국제행사 준비 확인
발행일2010-03-21 [제2689호, 8면]
▲ 주교회의는 정기총회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인간생명뿐 아니라 환경을 훼손하는 정책 추진과 관련해 입장을 표명하고, 생명 수호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사진은 2010년 주교회의 봄 총회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