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한 더위속의 쉐벳 벌판에서 땀에 전 파김치가 되어 펜스작업을 한참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강그리알에서도 펜스작업을 하던 이승준 신부와 주기적으로 위성전화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던 어느 날 저녁, 이 신부가 숨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바꾸어 말을 했습니다.
“한 신부, 잘 들어… 오늘 새벽 이태석 신부님께서 돌아가셨어.”
그리곤 서로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위중하시다는 소식과 함께 결국 언젠가 듣게 될 소식으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제발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이었기 때문에 마음 한편이 미어져 왔습니다. 이 신부는 마지막으로 신부님을 뵈었던 모습을 이야기했지만 그 이후로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수단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은하수가 큰 강이 되어 흐르고 하늘가득 별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하늘이었습니다. 아마도 신부님은 수단 밤하늘의 보석 같은 별이 되셨나 봅니다.
수단으로 오는 길을 열어주신 신부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 드렸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자칫하면 물을 붓는 사람이 힘겨워 나뒹굴게 되는 나락 같은 상황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으며 염려와 사랑으로 새내기 선교사인 저희들도 일으켜주신 신부님이셨는데….
아강그리알에서 살아오면서, 한국에선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이해할 수 없는 수단의 막막하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오신 신부님의 엄청난 에너지를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신부님의 여백이 마치 썰물로 밀려나간 갯벌처럼 저희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실감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위중한 병중에 있는지도 모른 채, 고국으로 휴가를 떠나시는 룸벡공항에서 배웅 나온 저희들을 보고는 비행기에 들어가시기 전에 “부럽지요?”하시곤 한 번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시고는 떠나셨는데, 그것이 수단에 남긴 마지막 말씀이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그 비행기를 타시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단을 떠나 하느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래요 신부님. 죽음이 비극이요 종말이 아니라 완성이요 시작임을 믿는 ‘믿음’으로 저희들이 신부님을 부러워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신부님의 행복이 당신의 꿈을 찾고, 당신의 꿈을 사셨던 아름다운 삶에 스며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구하는 사제로, 아픔을 치유하는 의사로, 꿈과 행복을 나누어주었던 음악인으로, 청소년을 사랑하는 살레시안으로 수단의 아이들을 사랑하셨던 신부님은 세상의 명예와 영광이라는 꿈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봉사와 섬김과 나눔의 꿈을 사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꾸셨던 꿈을 함께 꾸시며 그분께서 바라셨던 삶을 따라가셨던 신부님의 사랑은 분명 ‘그리스도의 향기’ 그 자체였습니다.
꿈은★이루어진다! 하지만 세상의 꿈이 자신의 현실적인 안위나 금전적인 부, 개인의 영예와 만족만을 채우려 한다면 결국 또 다른 욕망의 꿈을 낳게 하고 욕망은 결국 그 꿈의 방향을 왜곡하고 상실하게 만들 것입니다. 꿈을 이룬 다음에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꿈은 ‘이루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기위해’ 있는 것임을 헤아립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무지와 미지의 대륙이면서 또한 ‘무관심’의 대륙으로 남아있고, ‘그들의 가난은 그들의 게으름과 정치인들의 부패 때문이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라는 도덕적 합리화의 함정에 빠져있을 수도 있지만, 이태석 신부님은 내전과 가난으로 버려진 나라 같았던 수단에 오셔서 함께 살아가며 당신의 사랑과 연민과 연대로 이곳을 무관심에서 관심과 사랑의 장소로 바꾸는 꿈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헤아리고 또 헤아립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사람은, 내일의 꿈만 꾸는 사람보다 오늘의 꿈을 사는 사람들임을 말이죠. 당신의 참 사도요 사제였던 이태석 신부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많은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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