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그의 숭고한 삶이 교회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특히 동양평화를 부르짖은 애국자였던 그의 삶과 행동의 토대가 천주교 신앙이었음을 보다 깊이 연구해 알리고 현양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신앙인이었다. 빌렘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신앙인의 길로 들어선 그는 선교활동에 힘썼고 의병전쟁 중에도 기도에 철저했다. 장남을 성직자로 키워 달라 유언했고 성직자들에게는 민족 복음화를 당부했다. 자신의 사형집행도 성 금요일에 해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많은 독립운동 연구가들도 “그의 민족애와 정의감은 천주교라는 텃밭에서 자랐다”고 평가한다.
누구 못지않은 철저한 신앙으로 무장했던 안중근은 과연 십계명을 어긴 살인자였던 것일까. 우선 안 의사 자신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천주교 교리에서 금지한 죄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성경에도 사람을 죽임은 죄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죄악이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한 것뿐’이라며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안 의사의 의거는 현대 교회정신에 비춰 볼 때도 타당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79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떤 부족이나 종족이나 소수 민족을 완전히 말살시키려는 저 행위들을 숙고하여야 하며, 이는 잔혹한 범죄로 강력히 규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이런 범죄를 명령하는 자들에게 공공연히 저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저 사람들의 정신은 최상의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전한다. 이를 볼 때 안 의사의 의거는 일제의 조선침탈에 대한 엄연한 정당방위 독립전쟁이며, 비복음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인 폭력적 현실에 대한 저항행위로 설명할 수 있다. 안 의사는 찬사를 받아야 할 독립전쟁을 수행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신앙인 안중근을 조명하는 노력을 시작했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안 의사의 의거와 순국을 기념하는 미사와 학술발표회 등을 꾸준히 열었다. 김수환 추기경도 1993년 추모미사를 통해 “안 의사의 행위를 단순 살인으로 보고 왜곡하였음을 연대하여 깊이 통회하고 책임감을 느낀다. 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는 참 신앙인으로 나아가자”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 행사들이 안 의사의 행위를 숭모하고 기억하는 데 그쳤고 한국 교회 전체가 마음을 모은 행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안 의사를 일본 제국주의의 원흉을 암살한 독립투사로, 손가락 마디를 깨물면서까지 호국의지를 다진 청년으로 바라보면서도 그가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로 여기는 데는 여전히 어색해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봉헌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미사 강론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권고한 내용은 한국교회가 ‘신앙인 안중근’을 어떻게 바라보며 그의 정신을 계승해야 할 지 정확히 짚어준다.
“그분의 독립투쟁과 의거는 신앙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또한 안 의사께서 중요시했던 인권과 사회정의, 민권 수호 활동과 애국계몽 운동도 그리스도적인 사랑과 정의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안 의사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안 의사처럼 평화의 도구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안 의사가 짧은 생애 안에서 우리에게 부르짖었던 평화와 애국의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의 모태로 자리했던 깊고 절절한 신앙심을 조명하는 작업이 폭넓게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신자들에게도 안중근이 단순히 살인자가 아니라 신앙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어떻게 의거에 임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는지 교육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제 한국교회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그의 평화사상과 민족 복음화를 위한 노력을 계승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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