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북, 아이폰, 아이패드 등 하루가 다르게 미디어 환경이 변화되고 있는 21세기, 책은 ‘올드 미디어’로 취급된다. 하지만 독서의 힘은 크다. 디지털 시대에도 독서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3월 입적한 법정 스님과 지난해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저서를 사기위해 서점으로 몰려간 사람들에게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가르침이라도 그들의 ‘책’을 통해 얻고 싶은 거다.
▲ 가톨릭신문이 2005년부터 3년간 진행한 ‘신심서적 33권 읽기’ 운동은 교회 내 독서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풍을 지속적으로 이끌진 못했다. 사진은 운동 당시 서울 광장동본당 성물방에서 신심서적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
독서의 힘은 교회 역사 속에서도 확인된다. 400년 전 마태오 리치 신부가 쓴 ‘천주실의’를 읽으며 신앙심을 키운 한국교회 신앙선조들의 모습에서도 독서의 힘은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가톨릭신문 창간 80주년 기념 조사보고서(2007년)에 따르면 58.6%의 신자들이 일 년 동안 교회 관련 서적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교회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인구대비 신자비율이 이른 시일내에 1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는 교회는 내적인 성숙이 이뤄지지 않은 채 몸집만 커져가는 것에 불과하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와 가톨릭신문이 공동으로 ‘책 읽는 교회, 성숙한 신앙’을 기획한 이유다. 교회의 사목활동, 신자 개개인과 그룹, 기관단체 등에서 독서사목이 활성화 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하려 한다. 앞으로 1년 간 진행되는 이번 기획을 통해, 독서사목이라는 새로운 사목 패러다임이 한국교회에 정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 읽는 교회
교회는 오래전부터 독서를 장려해 왔다.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성경 역시 책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자들은 ‘성경’을 읽고 또는 필사를 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되새긴다. 교회는 또 문헌, 교리, 신학 등을 ‘책’에 의존해 가르쳐 오고 있으며, ‘천주실의’, ‘칠극’ 등 교리서는 유교사상이 팽배했던 조선시대에 한국교회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교회도 그동안 다양한 독서운동을 펼쳐 왔다. 이때문에 독서사목은 결코 낯선 개념이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성경공부와 거룩한 독서도 독서사목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신앙인들은 성경과 신앙서적을 통해 하느님이 전해주는 생명의 말씀을 접하고 맛 들인다. 또한 최근 몇몇 본당에서는 북 카페와 열린 도서관 등을 만들어 신자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독서를 통해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특히 가톨릭신문이 2005년부터 3년간 진행한 ‘신심서적 33권 읽기’ 운동은 교회 내 독서문화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줬다. 교회 내에서는 처음 시도된 독서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신심서적 33권 읽기 운동은 한국교회의 독서에 대한 열망을 알게끔 한 운동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1000여 명의 신자들이 독서운동에 참여했고, 본당과 기관단체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운동이 끝난 지금 그 열풍은 다시 잠잠해졌다.
이렇듯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독서사목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연령대 별 독서프로그램뿐 아니라 학문적인 접근도 부족한 실정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사목으로써 자리 잡기 위해서는 캠페인성 운동이 아닌 문화로 접근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성숙해지는 신앙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사목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문화의 복음화 포럼 하반기 주제를 ‘독서사목 - 책 읽는 교회’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몸집이 커져가고 있는 교회의 내적 성장 방안을 독서에서 찾고자 했다. 이 자리에서 발제자들은 독서사목의 중요성을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교회서적 내지 신앙서적은 신앙인에게 영혼의 양식이며 건강한 신앙생활의 보약”이라며 “독서사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독서사목은 우선 신자들을 영적으로 성숙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교회서적을 읽는 행위는 회개와 기도의 삶으로 이끌며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기존사목을 보다 활성화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얻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열린 도서관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가능하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는 치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독서사목의 필요성은 교회도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활용방법.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 내에는 다채로운 독서 프로그램이 미흡한 실정이다. 독서사목을 펼치고 있는 본당들이 있지만 한국교회의 성장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제대로 독서사목을 펼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지도자 양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책 읽는 교회, 성숙한 신앙’이 마련된 것이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와 가톨릭신문은 독서사목기획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독서사목의 방법을 모색한다 또한 기존의 독서사목을 실천하고 있는 본당 혹은 기관단체를 소개하고 독서지도자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아울러 이러한 내용들은 매주 가톨릭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된다.
독서사목 기획위원
▲ 독서사목 기획위원 김민수 신부, 김용은 수녀, 임성미 독서교육전문가, 박영대 소장(오른쪽부터).
▲김민수 신부(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서울 역촌동본당 주임)
▲김용은 수녀(살레시오 수녀회)
▲박문수 박사(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박영대 소장(우리신학연구소)
▲임성미 독서교육전문가(살레시오 사회교육 문화원)
■ 인터뷰 /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김민수 신부
“캠페인 아닌 ‘문화’로 정착해야”
본당 중심 사목으로 접근할 때 지속 가능
활성화에 도움 줄 독서지도자 양성 필요
▲ 김민수 신부는 독서사목을 통해 개인·공동체 영성함양은 물론, 기존사목을 보다 활성화시키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신문과 공동으로 ‘책 읽는 교회, 성숙해지는 신앙’을 기획한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인터뷰 처음부터 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와 함께 교회 내 ‘독서문화’의 실정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교회출판사에서는 엄청난 양의 책을 출간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의 독서문화는 아직도 자리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신부는 특히 가톨릭신문이 2005년부터 3년간 진행했던 ‘신심서적 33권 읽기’ 캠페인은 교회의 독서 실태를 그대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신심서적 33권 읽기’의 성과는 엄청났습니다. 전국적으로도 파장이 컸죠. 문제는 캠페인이 끝나자 다시 독서에 대한 열정도 차차 식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캠페인이 아닌 독서문화가 교회 안에 정착돼야 합니다.”
그는 독서를 한국교회 내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독서운동으로 마련된 저변을 사목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끝날 수 있는 독서운동의 한계성을 보완해 본당 중심의 사목으로써 접근할 때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다매체 시대에 독서는 신자들은 물론 공동체의 영성함양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치유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독서사목은 이렇듯 영성함양과 치유뿐 아니라 기존사목을 보다 활성화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현재 몇 개 본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독서사목을 소개했다. 한국교회의 덩치에 비하면 아주 간헐적이지만 그 속에서 김 신부는 가능성을 보는 듯했다. “로비에 북 카페를 마련해 책을 통한 만남도 가능하고,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간접적인 선교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회성 이벤트적 프로그램만으로는 역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좋은 사례가 있다면 일반사회나 타종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독서지도자 양성이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하고, 지도자들이 본당에서 활동할 때 독서사목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사제들의 역할도 강조했다. 책 읽는 사제들이 있어야 우리 교회도 책 읽는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제들이 읽은 책을 추천하면 신자들이 그 책을 읽게 되고 이는 교회출판사에 자극이 된다. 결과적으로 교회 내에 양질의 책이 발간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는 것이다.
“독서사목은 새로운 사목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들 인식하고 있지요.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와 가톨릭신문이 공동 기획하는 ‘독서사목’이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