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유난히 힘겹게 보낸 경기도 팔당 유기농지에도 봄이 찾아 왔다.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을지 모르는 농민들에게는 반길 수도, 반기지 않을 수도 없는 봄이다.
■ 빼앗긴 ‘강’에도 봄은 오는가?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가 매일 오후 3시에 봉헌하는 생명평화미사 장면.
4월 9일,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경기도 양수리 두물머리의 봄은 아름다웠다. 어떤 예술작품도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과 땅에서 솟아오르는 녹색기운, 새싹이 움트고 있는 나무 등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만들어내는 절경을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절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도심에서는 정신없이 흘러갔던 시간도 이곳에서 만큼은 정지된 듯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두물머리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지난해 정부가 4대강 사업 추진을 발표하면서, 팔당호 하천부지를 한강 정비 사업 대상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정부는 하천부지의 농토를 없애고 제방을 쌓아 자전거도로와 공원 등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홍수를 방지하고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다. 이 발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연간 100t의 유기농산물을 생산해 수도권 35만 가구에 공급하는 팔당 유기농지 80%인 74만여㎡가 사라진다는 말이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농민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정부의 강제측량을 몸으로 막아내고,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까지 도보순례를 했는가 하면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날 두물머리에서 만난 한 농민에 의하면 최근 남양주시와 양평군이 농민들에게 대체농지를 제공하겠다며,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농민들을 압박해 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유기농산물 생산자 최요왕(요한·45)씨는 “4대강 사업 공사를 위한 분할측량을 위해 이곳에 올 예정이라고 통보가 왔다”며 “막으면 경찰력을 동원한다고까지 알려왔는데 막아봤자 소용없지만 그래도 막아야 한다”며 씁쓸한 한마디를 던졌다.
■ 100일 간의 단식 그리고 간절한 기도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김희일 신부가 릴레이 단식기도를 하고있다.
두물머리에는 봄이 찾아 왔지만, 그곳 농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농민들이 그나마 외롭고 쓸쓸한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4대강 사업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를 비롯한 개신교, 불교 등의 종교인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특히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지난 1월 11일부터 단식기도를 시작해 4월 19일 100일째를 맞이한다. 지금까지 13명의 회원들이 보름씩 돌아가며 단식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복음적 가난 정신 안에서 이들이 단식기도를 하고 있는 두물머리의 한 비닐하우스에는 신자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적어 놓은 글귀들도 눈에 띈다.
수도회는 이와 함께 매일 오후 3시에는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어김없이 미사가 봉헌됐다. 미사에는 17명의 신자들이 참례했다. 팔당 유기농민도 있었고, 이들에게 힘을 주고자 외부에서 찾아온 신자들도 있었다. 강과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고상도 말없이 미사를 함께하는 듯했다.
두물머리를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단식기도를 했던 한 수사신부가 알려준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가 부른 ‘피조물의 노래’의 한 부분을 되새겼다.
“내 주님, 우리의 자매요 어머니인/땅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시옵소서./그는 우리를 기르고 다스리며 울긋불긋 꽃들과/풀들과 온갖 과일을 낳아 주나이다.”
■ 4대강 사업과 교회의 말말말
▲ 교황 베네딕토 16세 ‘제4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중
교회는 피조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모두에게 주신 선물인 땅과 물과 공기를 보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를 자멸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공공 생활에서 그 책임을 행사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황폐화는 인류의 공존을 이루는 문화적 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개인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를 모두 고려하는 인간에 대한 의무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저는 생태적 책임 의식을 더욱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꺼이 격려합니다.
▲ 3월 12일 ‘생명 문제와 4대강 살리기’에 대한 한국주교단 성명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인 합의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며 수많은 굴삭기를 동원해 한꺼번에 왜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욕심으로 인한 경솔한 개발의 폐해가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지워질 때, 이 시대의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 지난해 12월 9일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 출범 결의문
우리 신앙인들에게 생명 및 환경보호는 의무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창조물들과의 상호연관성을 중시하는 창조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며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 지난해 12월 29일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천주교 비상행동 기도회에서 취지를 전한 최덕기 주교
저나 여기 함께하신 신부님들 - 모두 사목자로서 할 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수도자와 평신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정치인도 아니고 이 일이 재미있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본연의 일만 열심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시간 내고 우리 돈 들여가며 나서는 이유는, 환경파괴로 우리 대와 후손들에게 불행이 닥칠 것을 뻔히 알면서, 앉아서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이렇게 외치며, 4대강 사업 반대하는 많은 분들의 힘을 모으고, 이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마지막 양심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 경기도 양수리에서 릴레이 단식과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선언과 호소’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목적과 현장상황이 너무나 다르게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생태환경을 만든다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깨끗한 물 관리를 주장하면서 물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4대강 사업에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