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던 강추위가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 붙게 하더니 따스한 햇살이 비추어 봄날을 연상케 하는 12월의 어느 날.
가족없이 홀로되어 소외되고 병든 노인들에게 목욕 봉사활동을 펼쳐온 전남 화순본당의 「이동 무료 목욕봉사단」을 찾았다.
한적한 동산 위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화순본당. 편찮으신 몸인데도 불구하고 반답게 맞아주시는 백용수(마태오) 신부님의 친절한 안내로, 성당 한켠에 대기중인 「이동 목욕차」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동 목욕차 주변은 봉사 단원들의 발길로 분주하고 살짝 들여다 본 차안에 목욕통을 포함해 샴푸, 비누, 수건, 때타월 등이 올망졸망 자리잡은 모습이 마냥 정겹기만 하다.
오늘의 행선지는 성당에서 20여분 떨어진 동면 복암리. 여든이 넘으신 권복실(마리아)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사랑의 때밀이는 레지오 단원들로 구성된 구진택(도마), 송현자(글로리아), 김의자(바울라), 이영남(안나)씨이다.
권할머니 집에 들어선 순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듯한 폐가에, 마당 주변에는 연탄 더미와 온갖 잡동사니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고 그나마 녹이 슨 냉장고와 이불 몇가지들이 살림의 전부였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반가운 인사라도 하려는 듯 그 집의 누렁이는 왜 그리 짖어 대는지…
손바닥 만한 방안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하루종일 누워만 계시는 권할머니를 생각하면 방안 가득 코를 찌르는 지린내쯤이야 아무 것도 문제가 안되었다.
우선 방청소를 하고 자리를 깔아 목욕탕을 운반하는 등, 봉사단원들의 이마엔 어느새 구슬땀이 맺힌다. 여자 봉사단원들에 의해 할머니의 목욕이 이뤄진다.
젊은 날의 건강함은 사라지고 마른 잡초처럼 시들시들해진 할머니의 육체. 그러나 할머니의 살결은 곱고 희며, 천사와 같은 눈빛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신다.
『할머니 목욕하시니까 좋으세요?』라고 했더니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말을 못하시는 것이다. 한참 후에 못내 미안해 하시며 『좋아. 물이 따뜻해서 좋아!』라고 한마디 하신다.
현재는 치매로 인해 전혀 거동을 못하고 계시지만 젊은 시절에는 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일하셨을만큼 의욕이 대단하셨다는 송글로리아씨의 귀뜸이다. 20여분 만에 새사람으로 말쑥해진 권할머니,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할머니의 볼이 뽀얗게 달아 오른다. 젖은 머리를 단정히 빗고 하얀 내의로 갈아입은 할머니는 아이처럼 방긋 웃는다. 방안에 모여 선 채, 주모경을 바친 후 오늘의 봉사활동을 끝마쳤다.
방문을 나서는 봉사단원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으로 할머니의 눈가엔 그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봉사단원들에게 『봉사하시면서 힘든 점이 많으시겠어요?』라고 했더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뿌듯하다』며 『하느님을 직접 만나 뵌듯한 기분이어서 기쁘다』라고 말한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그분의 정신을 실천하며 슬픔과 외로움을 씻어내는 사랑의 때밀이들. 그들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사랑이 피어난다.
이동 목욕차는 96년 화순본당 청년들에 의해 탄생됐다. 당시 본당 청년가운데 한 청년의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해 오랫동안 누워 생활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목욕봉사를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돼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본당의 지원아래 2천만원이란 거액을 들여 특별 제작한 이동 목욕차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받으며 화순군 곳곳을 누빈다.
날이 갈수록 이동 목욕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늘어낫지만 IMF한파가 이곳 이동 목욕 봉사단에까지 불어와 봉사자와 후원의 손길이 눈에 띄게 줄어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지원도 없이 후원자들의 정성과 성당의 지원만으로 운영되고 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동 목욕차의 앞날이 어둡기는 하지만 작은 나눔으로 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의 때밀이들의 맑은 미소 속에서 희망찬 내일을 본다.
▦ 도움주실 분=화순성당 이동 목욕봉사단 (0612) 374-7608
광주은행 737-107-001280, 농협 655-12-141382, 우체국 500546-0123909 (예금주 백용수 신부, 화순성당 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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