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엔 항상 노인들로 북적된다. 이곳에 오면 노인문제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고 얼마 후 맞이할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유엔에서는 「99년을 세계 어르신의 해」로 정했다. 어느 나라, 누구 할 것 없이 노인문제를 내다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본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어르신의 해」를 시작하면서 사회문제로 대두된 노인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 노인에 대한 관심을 유도해 나가고자 한다.
심각한 노인문제
일제시대에 태어나 민족의 울분을 삼키며 젊은 시절을 보냈고, 6·25때는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겼던 사람들. 옳게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면서 자식교육에만 한평생을 바쳤던 세대.
한국사회의 노인들은 한마디로 설명할때 『사회에 많은 공헌은 했지만 산업화 광정 속에서 핵가족화와 개인주의 경향에 짓눌려 자신들의 설자리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사람들』로 표현한다.
경로효친의 전통적 윤리규범이 함께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가장 힘겹고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노인이다. 노인들은 바로 어려운 세대를 살아 오면서도 『자식만 잘 키워서 훌륭한 사람으로 출세를 시키면 자신의 노후생계는 자식들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사회구조가 급격히 산업화 도시화 서구화되면서 경로효친의 사랑이 급격히 최조, 노인들이 과거와 같은 존경받던 가장으로서 사회의 어른으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유지하기 힘들도록 전락해 버린 셈이다.
무엇보다 노인복지대책이 제도적으로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한국사회의 경우 노인들은 경제적 빈곤과 질병, 그리고 무료함이나 심리적 소외감 등으로 아주 고통스러운 노후를 보내고 있게 마련이다.
얼마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다가구 주택에서 세들어 살던 노인인 김모씨(66·고물상)가 사망한 지 20여일만에 발견됐는가 하면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노부부가 함게 이세상을 떠난 일 등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노인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에는 날씨가 차가운 요즘에도 오갈데 없는 노인들이 수백명씩 나와 점심때만 되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줄을 몇 백미터씩 서서 식사를 기다리는 풍경을 연출한다.
이들 중에는 실제로 배가 고파서 점심끼니를 기다리는 경우도 상당수 되지만 「집에 있기가 답답해」,「자식이나 며느리들에게 눈치가 보여서」공원에 놀러나와 점심을 먹는 경우가 많다.
가회동에서 왔다는 이정표(79세)할아버지는 『집에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며느리가 귀찮아 해 아침만 먹으면 이곳으로 와서 놀다가 저녁 늦게 귀가한다』고 설명한다.
유엔이 정한 세계 어른신의 해
이처럼 심각한 노인문제는 국내 문제를 넘어 전세계적인 추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노인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회구조적인 변화와 더불어 갑자기 늘어난 평균수명 등은 세계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가져왔다. 전세계적으로 60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총 5억8천만명선. 그러나 2020년에는 10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때 일본의 경우 전체 인구의 31% 정도를 노인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한국도 분명 예외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1950년대 이후 세계 평균 수명이 20년 이상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노인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유엔은 99년을 세계 노인의 해로 선포, 금년 한해에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노령화로 인한 노인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자극과 관심을 주자는 운동을 벌여 나갈 계획이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를 위해 새해 1월 1일 『모든 연령층을 위한 사회를 향해』라는 주제로 노인의 날을 공식 선포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취지에 맞춰 「세계 노인의 해 한국 조직위원회」를 결성, 앞으로 1년간 노인복지 향상과 경로효친 사상 고양을 위한 각종 행사를 주관하고 각종 정책개발에 주력키로 했다.
그러나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등이 주축이 돼 노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한다는 차원에서 노인대신 순수 우리말인 「어르신」으로 호칭을 바꾸기로 결정, 세계 노인의 해를 어르신의 해로 부르게 됐다.
왜 노인문제인가?
의학의 발달과 식생활의 개선 등으로 우리나라의 평규수명은 평균 73세 정도. 특히 우리나라의 노령화 추세는 과거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7%에서 14%로 증가하는데 소요된 기간을 보면 일본이 26년, 영국이 45년 소요된 반면 우리나라는 겨우 22년만에 이같은 수치를 달성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렇가면 노인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설명이며 이를 위해 적절한 대안과 대책들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이미 정부에서 경로연금을 지급하고 있는 극빈노인의 경우만 하더라도 65만여명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노인 문제는 앞르오 우리사회가 풀어가야할 가장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한국보건사회견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20년경에는 치매노인만 62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기타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환자가 급증, 다각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인구 5명 중 1명이 60세 이상인 고령사회로 이행돼 가는 과정에서 개롭게 나타나고 있는 또 다른 형상이 있다면 무소득자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특별히 요즘에는 정년퇴직 시기를 앞당기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주기 위해서라면 평균 정년퇴직 시기가 55세 이하로도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만큼 정년 퇴직후 무소득 상태에서 노후생활을 해야 하는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그만큼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함께 안고 살아갈 의무를 지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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