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봄날의 일이다. 우리 집 앞 우물가에서 얼마 전에 이사온 여자아이와 마주쳤다. 약간 쑥스러워하는 나에게 자기는 전라남도 목포에서 이사온 점례라고 소개하였다. 그리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성당에 다닌다는 말에 약간의 호감이 생기기는 했다.
그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점례가 나에게 다가와서 근처의 산에 같이 놀러 가자고 제안하였다. 망설이는 나에게 자기의 오빠에게도 허락을 받았다며 재촉하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핬다. 혹시나 친구들이 볼까바 두려워 논두렁길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산을 향하던 우리는 개울 건너 급우에게 들키고 말았다. 『야 희선아 여자아이랑 어디로 가는 거냐?』외치는 급우의 야유에 창피하고 당황한 나머지 그만 점례와의 산행을 포기했다.
그 뒤로 점례와 마주치더라도 슬슬 피하기만 하던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점례가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내 친구녀석 하나가 그녀의 고무줄을 칼로 자르자 점례가 고무줄을 찾으려고 내 친구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묘한 입장에 처한 나는 잠시 망설였다. 점례의 편을 들어야 하나, 아니면 친구의 편에 서야 하나? 마침 옆에 있던 또 다른 급우는 하필이면 점례와의 산행 시도를 목격하고 야유를 보낸 녀석이 아닌가!
무런의 사회적(?) 압력에 굴복한 나는 눈을 감고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그러자 점례의 절망적인 울음소리가 내 가슴을 때렸다. 평소에는 약자의 편을 잘 든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내가 억울한 점례의 편을 들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임을 알면서도 말 한마디조차도 못하고 비겁해진 내가 미워졌다.
나중에야 알게된 일이지만 점례는 많이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사소한 일이었을 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하여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용기의 부족과 체면 때문에 못하고 말앗다. 문제는 나 자신의 이기심이었다.
이제 와서 반성해보니 나 자신의 이기심에 대하여 좀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첫째는 점례와 함께 산행을 감에 있어서 당당하지도 못했고, 급우에게 들킨 것에 대한 책임을 점례에게 전가했다는 사실은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둘째는 그 뒤로 점례를 의식적으로 피한 것은 급우들에게 나 자신이 결백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나의 태도는 위선적이었다. 셋째는 점례가 억울한 지경에 처하여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또 다시 급우들의 눈이 무서워 평소의 소신을 저버리는 비겁한 행공을 저질렀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에게 사화를 했어야했지만 나의 자존심을 앞세워 해야할 바를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어린 나이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들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대수롭지도 않은 듯한 일들이 모이면 큰 일이 되고 만다.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은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마태오 4장17절)』하고 우리에게 촉구하신다. 많은 교우들께서 회개하는 것을 마치 커다란 잘못이나 죄악을 안전히 씻어버리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개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실제로 나에게는 아주 사소한 듯해도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잇는 이들은 허다하다. 불친절한 언행, 사소한 무관심, 무시하는 태도, 약속 시간에 늦는 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처사 드등에서부터 자신의 회개할 점들을 깨우쳐야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작은 일에서부터 회개해야 큰 일에서도 회개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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