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덩이를 단 것처럼 다리를 들어올리기 힘들어졌다. 평지다 싶어 한숨 돌리면, 또다시 시커먼 산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내리막 길에선 내심 신나게 내려오다, 발목을 살짝 접질렀다. 포기하긴 싫었다. 하지만 지독히도 숨이 찼다. 길도 지겨우리만치 길었다.
총 거리 222.22km, 42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쉬지 않고 뛰는 여정이었다. 서울 명동성당을 출발해 새남터성지, 남한산성성지, 천진암성지, 마재성지, 구산성지…. 총 14개 성지를 거쳤다. 십자가의 길과 사뭇 비슷했다. 가톨릭마라톤동호회(회장 조병록, 지도 손석식 신부)가 마련한 제6회 성지순례 울트라 마라톤 대회다.
갑자기 옆에서 ‘헛둘 헛둘’ 힘찬 구령소리가 들렸다. 느릿한 뜀박질에 힘이 붙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마음 속 불평들이 부질없이 사라졌다. 흐트러진 몸과 마음이 바로잡히는 듯했다.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확신이 섰다. 출발할 때의 경쟁심도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이웃들과 함께 뛸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마라톤 여정은 인생 굴곡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올해는 총 71명의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성지순례 울트라마라톤’을 뛰었다.
가톨릭마라톤동호회는 지난 2002년 창립됐다. 창립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회원들에게 ‘달려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휘호를 선물했다. 현재 전국 1100여 명의 회원들이 성지를 달리고, 거리를 달리며 비신자들에게 가톨릭교회를 전하고 있다. 특히 사순시기와 성모성월에는 순교자의 신심을 되새기며 울트라마라톤을 펼친다.
처음엔 나 자신만을 위해 달렸다. 달리다보니 자기 성찰의 시간이 주어졌다. 마음이 하느님을 향해 오롯이 모아졌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도 감동했다.
무엇보다 달리는 여정 곳곳에서 시원한 물 한 잔, 밥 한 그릇 건네준 자원봉사자들이 너무 고마웠다. 마라톤 참가자들의 두배도 넘는 160여 명의 봉사자들이었다. 안마봉사를 해준 시각장애우 마라토너들의 따뜻한 정성에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느님을 위해 달릴 수 있어서, 그 여정을 함께할 이웃이 있어서 오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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