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칠리아의 남편 발레리아노는 자신은 물론 동생까지도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들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순교자들에게는 무덤을 제공하는 등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이교신을 숭배하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참수당하여 순교했다.
한편 체칠리아 역시 우상숭배를 거절하자 알라마키오라는 재판관이 그녀를 밤새 목욕탕에 넣고 쪄 죽이라는 끔찍한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은 채 살아 있었다. 그러자 재판관은 체칠리아에게 참수형을 명했는데 사형 집행자가 서툰 탓이었는지 체칠리아의 목을 세 번 내리쳤으나 몸에서 목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의 법은 세 번 이상 목을 내리치는 것을 금했다고 한다. 성녀는 목이 반만 붙은 채 3일을 더 살았으며 그 사이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체칠리아는 임종 직전 남편에게 세례를 주기도 했던 우르바노 주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저는 당신이 제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느님께 3일을 기도했습니다. 제 집이 있는 자리에 교회를 세워주세요.”
이 말을 끝으로 체칠리아는 영면했다. 우르바노 주교는 그녀의 장례를 치러주고, 그녀의 집을 교회로 축성했다. 그때가 200년 경이었다. 다른 자료에서는 229년 경이라고도 하니 200년에서 230년 사이로 보면 될 것 같다.
로마에는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 때 만들어진 거대한 공동묘지인 카타콤바가 여러 곳 있는데 이들 카타콤바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칼리스토 카타콤바이다. 성녀 체칠리아의 유해는 바로 이곳에 모셔졌다. 성녀의 무덤은 그것이 만들어진 직후부터 수많은 참배객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다. 그곳은 대리석으로 바닥과 벽이 단장되었고 천장도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교황 파스칼레 1세(817-824)는 그녀가 살았던 집 터에 산타 체칠리아 인 트라스테베레라는 성당을 건립하여 820년 카타콤바에 모셔져 있던 성녀의 유해를 그곳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녀 체칠리아를 조각한 생생한 조각이 한 점 전해진다. 이 조각은 1599년 산타 체칠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교회를 재건축할 당시 성녀의 유해를 확인하기 위해 관을 열었는데 놀랍게도 시신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시신이 급속히 부패한 것은 관을 열면서 시신이 공기와 접촉하면서부터였다.
이 조각은 관 속에 있던 성녀의 생생한 모습을 지켜 본 파올로 스폰드라티라는 추기경이 기록한 글을 토대로 바로 그 해인 1599년 조각가 마데르나가 관을 열었을 당시의 성녀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본 칼럼에 소개한 이 작품은 마데르나의 원작을 복제한 것으로 칼리스토 카타콤바에 있는 산타 체칠리아 성지에서 볼 수 있으며 원작은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에 모셔져 있다.
이 조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실물 크기이다. 성녀는 얼굴을 땅에 묻고 두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옆으로 누워 있는데 마치 잠을 자듯이 편안한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성녀의 목에 칼자국이 보인다. 참수 당할 당시 목에 칼을 세 번 맞고도 목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두 손을 보면 왼손은 세 손가락을 펴고 있고, 오른손은 검지 하나만 펴고 있는데 이는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은 곧 성부와 성자, 성령이심을 임종 마지막 순간까지 증거하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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