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프랭스 델마(Delmas) 33번지의 한 임시 캠프.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동행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민경일 신부와 김대민 차장, 한여림(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수녀가 캠프의 열악한 모습에 망연자실해 했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고 방황했던 450여 가구의 이재민들이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임시 캠프는 산 비탈길에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1평 남짓한 텐트에는 4~5명이 함께 생활했다. 텐트 바닥은 장마를 대비해 건물 잔해로 채워 지반보다 높은 상태였다. 평평하게 고른 잔해 위에 나무를 세우고 방사포만 대충 묶어 뜨거운 햇볕과 소나기만 피할 수 있는 임시 대피소 수준이다. 바람도 잘 통하지 않아 한낮에는 텐트 밖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살림살이랄 것도 없다. 지진 피해 현장에서 주워온 듯한 냄비, 물통, 의자 등이 전부였다. 옷은 텐트 위나 나뭇 가지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화장실도 450가구에 단 8곳. 씻는 곳도 공동으로 사용했고 음식도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나마 이런 고통은 견딜만한 편이다. 이재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장마와 허리케인. 현재 아이티는 우기로 접어든 상태다. 텐트는 방수가 되지 않았고, 배수로 정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홍수가 나면 이재민이 다시 이재민이 될 가능성이 컸다. 최근 수년간 카리브해에는 허리케인이 부쩍 증가해 2004년에만 아이티에서 수천명이 숨졌고, 2008년에도 열대성 폭풍과 3개의 허리케인으로 아이티인 8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그만큼 이재민들의 근심은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다.
공포는 공포를 확대한다. 5월 2일 오후 5시, 우려하던 비가 아이티에 내리자 포르토프랭스 거리와 임시 캠프는 혼란스러운 모습이 역력했다. 이재민들에게 젖은 옷 등 살림살이를 말리는 일이 하루 일과가 됐다. 거리는 고지대에서 휩쓸려온 쓰레기로 가득 찼고, 지진으로 지반이 약해진 곳이 무너져 잔해도 계속 쌓여 있었다. 쓰레기로 막힌 하수도 정비도 한창이었다. 현재 아이티에 치워야 할 쓰레기만 6300만 톤. 비가 오면 잔해 속 쓰레기가 계속 쓸려와 치워야 할 쓰레기양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재민들 사이에서도 빈부격차가 나타났다. 포르토프랭스 남서쪽 17km 지점의 지진 진앙지에는 이 같은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놓고 이재민 캠프 두 곳이 나란히 있었다. 한 곳에는 구호단체로부터 받은 비교적 방수가 잘되는 10인용 이상의 텐트가 있었고 우물, 정수기, 책, 간이 슈퍼, 자전거 등도 눈에 띄었다. 다른 한 곳에는 이재민들이 나무와 방사포로 직접 만든 3~4인용 임시 천막이 있었다. 살림살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어제 내린 비로 젖은 옷을 말리고 빨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구호물품 배분의 형평성, 이재민들의 빈부격차는 해결해야할 과제다. 나눠 주려면 공평해야 한다. 모두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지원받은 자와 지원받지 못한 자,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많은 이재민을 다 챙겨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제다.
무너져 버린 십자가
아이티교회 피해도 심각하다. 지진으로 아이티 10개 교구 중 포르토프랭스 대교구, 자크멜 교구 등 3교구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포르토프랭스 대교구장 요셉 세르지 미오 대주교를 비롯해 5명의 사제, 56명의 수도자, 14명의 신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포르토프랭스 주교좌인 성모승천대성당 등 32개 성당이 무너지거나 파괴됐으며, 신학교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나머지 교구에서도 경당 등이 무너졌고 이주민 유입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5월 1일, 신앙 터전을 잃은 신자들이 포르토프랭스 대교구 성심성당 성전 밖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하루빨리 상처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희망을 찾게 하소서’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에는 간절함이 배어났다.
대지진이 발생한지 4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성당 내에는 잔해가 쌓여 있었다. 성당 앞에는 구걸하는 노인과 아이가, 성당 내에는 무너진 성당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신자가 눈에 띄었다.
사제의 꿈을 키워갔던 신학생들도 열악한 환경속에서 지내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외곽 지역 한 수련원에서 150여 명의 신학생이 텐트생활을 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신학교 학장 기 부시꼬(Guy Bouccicaur) 신부도 방수가 되지 않는 텐트에서 지냈다. 성당, 강의실, 식당도 급하게 마련돼 부족한 것 투성이다. 전기 문제도 수시로 발생한다고 했다.
존경하는 선배 성직자와 수도자, 동료 신학생을 잃은 신학생들은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 수련원 곳곳에서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신학생들은 아이티 교회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막중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
올해 6월 부제품을 받을 예정이었던 장 바피스 아로니(Jean baphise Anrony) 신학생은 “주님을 증거하고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어 부르심에 응답했다”며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주신 예수님을 닮은 사제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올해 6월 부제품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대지진으로 수품이 무기한 연기됐다.
수도회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총 7개 공동체에 27명의 수녀가 활동하고 있는 아이티 샬트르성바오로 수녀회 본원은 경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무너진 상태다. 수녀들은 현재 인근 지역 총 62가구의 주민들과 함께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미사는 나무로 십자가를 만든 임시 성당에서 참례한다. 이날 샬트르성바오로 수녀회 서울 관구로부터 3000유로를 전해 받은 마리뽈 수녀는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아이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 국가인 아이티. 국민과 교회가 한마음으로 대지진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주거 마련과 복구 작업 등 대책은 멀어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울부짖고 있지만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적었다.
아이티 후원 계좌
454-005324-13-045 우리은행
예금주 : (재)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문의 : 02-727-2267
[눈물의 땅, 아이티를 가다] (2) 사각지대의 이재민, 그리고 빈부격차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는지… ”
발행일2010-05-23 [제2698호, 11면]
▲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포르토프랭스 대교구 성심성당.
▲ 아이티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본원을 방문한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민경일 신부(맨 왼쪽)와 일행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