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했던 치릴로 성인은 ‘이단’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카락이 곤두섰던 분이다. 팔 걷고 나서 “싸우자”고 대적했던 분이다. 이런 이유로 생긴 해프닝도 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우리가 ‘금구(金口)’라고 부르는 성인이다. 별명이 금구일 정도로 말씀과 강론에 능통하셨던 분이다. 특히 수많은 신학적 논증들을 정립하신 훌륭한 분이다. 치릴로 성인보다는 20여 년 선배다.
그랬던 금구 성인이 한때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의심받은 일이 있었다. 오직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던 치릴로는 당연히 이단으로 의심받는 금구 성인의 반대 입장에 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치릴로는 금구 성인의 주장이 이단이 아님을 알게 된다. 치릴로는 즉시 금구 성인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화해를 했다. 그리고 금구 성인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사람은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신앙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야 회개가 뒤따르고, 그래야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할 줄 아는 것이 바로 구원의 첫걸음이다. 자신을 합리화하고,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고, 자신만이 진리를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바로 우리 모두를 멸망의 나락으로 이끈다. 치릴로의 이러한 성덕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치릴로 성인의 진면목은 네스토리우스 이단과 투쟁하는 그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성인은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극복하라고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분이실지도 모른다.
우선 네스토리우스 이단에 대해 살펴보자. 가톨릭교회는 예수님 안에 신성과 인성이 동일하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네스토리우스는 그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 있다고 했다. 이는 다분히 인간적인 해석이었다. 계시는 본질적으로 인간적 이성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계시인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섭리를 이성으로만 이해를 하려다 보면, 자칫 합리적으로만 생각하려할 수 있고, 그래서 이런 이단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생각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갈수록 그 영향은 심각해진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다보니 성모님의 지위에 대해서도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네스토리우스 이단은 성모님은 하느님의 모친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 예수의 모친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성모님은 인간 예수의 어머니다. 동시에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신 하느님의 모친이시다. 또한 신비적 차원의 계시를 통해 교회는 성모님이 승천하셨다고 신앙고백한다. 네스토리우스는 이 모든 주장을 반박했다. 인간적 머리로 이 모든 계시를 이해하려다 보니 그렇다.
치릴로 성인이 당연히 반박에 나섰다. 61세 때 에페소 공의회에 참여해 네스토리우스 이단에 강하게 반박했다. 그래서 하느님의 모친 교리를 정립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치릴로는 네스토리우스의 모함으로 2년간 감옥살이를 하는 등 고난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고난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진정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단들의 완고한 마음에 가슴이 아플 뿐이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의 머리로, 자기 뜻대로 하느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교만이었고 모순이었다. 치릴로 성인은 감옥 생활을 마친 후에도, 마지막 일생을 교회를 보호하고 교회를 발전시키고, 교우들의 올바른 신앙을 돕는데 바쳤다.
내면형성의 완성을 통해 상호형성을 완성하신 치릴로 성인은 더 나아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치릴로 성인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아직도 정통 계시를 알지 못한채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교황님들과 주교님들은 지금까지도 줄곧 치릴로 성인의 모범을 이어오고 있다.
주교님과 교황님뿐만 아니다. 치릴로 성인의 삶과 가르침은 오늘날 평신도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잘못된 신앙생활로 이끄는 유혹들이 넘쳐난다. 성모님이 발현했다며 사람들을 그어 모으고, 적 계시가 어쩌구 저쩌구 한다. 모두 교만에 의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이요 공번된 정통 교회의 가르침을 따를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치릴로 성인이 목숨을 걸고, 평생동안 수호한 참 진리를 따를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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