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보다 10개월 된 태아가 더 존중받을 만하다? 옳은 명제인가? 그렇다면 고등학생의 생명은 초등학생의 생명보다 더 귀한가? 아이가 어려 부모가 대신 법소송을 하면, 그 어린아이는 인간이 아닌가?
교회는 인간이 수정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동일한 생명권을 가진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발달 단계를 분리해서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누누이 강조했다. “모든 인간은 배아였다. 배아가 인간이 아니라고 하면, 인간은 어디서부터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있나.”
■ 헌재 판결 내용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 골자는 ‘수정란과 수정 후 14일간의 초기 배아는 인간 생명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비록 인공수정이라는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배아를 하나의 세포군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판결로 인해 결과적으로 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오·남용할 길을 활짝 연 형국이 됐다.
헌재는 이번 판결에서 가장 먼저 착상되지 않은 배아는 생명이 아니므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의 자연과학적 인식 수준에서 독립된 인간과 배아간의 개체적 연속성을 확정하기 어렵고, 모태 속에서 수용될 때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없어 헌법소원 청구인 적격이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헌재는 배아를 5년간 보존하고 이후엔 폐기토록 한 독소 조항에 대해서도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서는 “잔여 배아 수가 많을 때 생길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부적절한 연구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해야할 필요성이 큰 만큼 보존 기간 의무를 규정한 것은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전했다.
배아 보존기간을 5년으로 규정한 조항이 정·난자 제공자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배아를 만든 사람들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생명윤리법이 체외 수정 배아 수와 생성 횟수를 제한하지 않아, 불필요한 배아가 대량 만들어질 수 있고, 과배란을 유도할 위험이 생긴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수정 후 배아 시기를 거쳐 태어나기까지 연속적인 인간 발달 단계 배아는 시기적으로 초기단계이므로 아직 미숙하고 형체가 불분명한 것일 뿐이다. 미숙하고 형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인간생명이 아니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인간 배아는 수정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한 ‘인격’으로서 지닌 생명의 절대적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교회는 생명권이 어떤 실정법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자연법이라고 가르친다. 인간 생명은 존재론적 질서의 최상위에 있으므로 모든 가치질서 중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변하지 않는 보편타당한 자연법에 근거한다. 결국 배아는 인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헌재도 이번 판결문에서 “오늘날 생명공학 등의 발전 과정과 헌법적 가치질서 성격을 고려할 때, 국가는 초기배아에 대해서도 헌법적 가치가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보호할 의무가 인정된다”는 의견을 덧붙이며, 배아가 인간이 아니라고 밝힌 전제를 희석하는 애매한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독일 등에서는 불임시술을 위한 배아의 생성 목적과 수, 관리 단계 등을 엄격히 제한하는 ‘배아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교회는 우선 생명윤리법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수정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현행 생명윤리법이 배아 ‘세포군’이라고 정의한 용어를 ‘생명체’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법은 배아를 세포군으로 정의해 하나의 도구로 격하시키고 있다. 또 배아의 ‘보존’, ‘폐기’ 등을 ‘유지 혹은 보호’, ‘사후 조치’ 등의 용어로 바꿔야 한다고 밝힌다. 생명윤리법은 특히 잔여 배아를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번 합헌 판결은 생명윤리법이 허용하는 잔여배아를 이용해 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방식의 연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체세포핵이식 연구 또한 허용된다는 말이다. 이 실험은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체세포 복제배아를 인위적으로 생성한 뒤 죽이는 과정을 포함한다. 즉 죽일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생명을 만들어내는 심각한 윤리적 폐해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 교회는 근본적으로 잔여배아를 만들지 말 것을 권고한다. 따라서 잔여배아를 생성하고 죽이는 불임시술에 대해서 강력히 경고한다.
이미 생성돼 살아있는 배아는 자연적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호할 것을 강조한다. 이번 판결에선 냉동 등 배아 보호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으로 인해 일정 기간 후에 배아를 죽이는 것을 허용했다.
현재로선 냉동을 통해 보호 또는 입양임신으로 출산하는 것이 최선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 또한 출산할 가망이 없고, 체계적이고 의무적인 입양임신이 보장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과도한 기계적 장치 등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고려될 수도 있다. 아울러 법적으로 자녀의 생명권을 부모가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조항도 반생명적이고, 비윤리적인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번 헌재 판결은 나아가 그릇된 생명윤리법 개정에 힘을 실어줄 수 있어 교회 안팎의 전면적인 대처가 요구된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창영 신부는 “일부 생명공학계 등의 주장대로 배아가 생명인지 아닌지 100% 확신할 수 없다면, 확실하게 과학적 증명이 이뤄질 때까지 소급해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한다. 이 신부는 “만약 인간이냐 아니냐 의문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감히 살인을 무릅쓴다는 것은 법 해석에 맞지 않다”며 “법은 최대한 인간 생명을 수호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신부는 “헌재 판결은 배아를 생명으로 보지 않는 해석에서부터 문제점이 이어지고 있다”며 “배아가 인간이냐 아니냐는 헌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