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는 신 존재 증명의 길을 통해서 창조와 관련한 두 가지 사실을 암시적으로 가리킨다. 첫째는 창조된 존재들을 통해 체험적·간접적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알게 되고, 둘째는 창조된 존재들의 ‘존재이유(所以然)’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체험적·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하느님은 무조건적으로 최종 실재인가? 토마스 신학의 전제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그분은 현존하시는 만물의 제1근거다. 동시에 만물의 최종근거로서 ‘그 자체로 필연적인 부동의 제1원리’(Primum principium immobile et per se necessarium)다. 이 신관(神觀)은 모든 변화, 곧 시간과 역사를 논리적으로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느님의 주도권 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을 출발해 인류의 역사를 거쳐 하느님께로 귀환한다. 변화를 모르는 신 존재가 변화의 총체인 역사의 근거며 만물의 근거다. 그러므로 하느님 체험은 간접적으로만 주어진다. 하느님 존재는 특성상 인간 체험의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은 까닭이다.
일종의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 혹은 Via negativa)이 토마스의 뇌리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하느님은 어떤 방식으로도 인간 인식과 체험의 직접적 대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하여 토마스의 하느님은 창조와 실제적 관계가 아닌 ‘근거의 관계’(Relatio rationis)만 가진다. 이 관계에서 하느님은 존재하는 모든 만물의 존재근거로 사물에 절대적으로 내재(內在)한다. 따라서 창조된 만물은 존재자의 존재에 참여함으로써 실체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하느님은 존재하는 것의 원인이며, 창조물에게 창조물 자신보다 더 내밀한 존재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이 인간과 세계 안에 내재하심은 하느님 존재의 직접성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하느님 존재가 간접적으로만 주어진다. 따라서 창조물은 인간 체험의 직접적 대상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알게 하는 중재의 역할을 한다.
리치는 사물의 존재이유를 두고 네 가지로 요약했다(試論物之所以然有四焉). 운동인(作者), 형상인(模者), 질료인(質者), 목적인(爲者)이 그것이다. 리치의 설명에 따르면, 운동인(The efficieint cause)은 ‘사물을 만들어 사물이 되게끔 하는 것(造其物而施之爲)’이다. 형상인(The formal cause)은 ‘사물의 모습을 드러내 본래의 범주에 자리 잡게 만들어 다른 부류와 구별되게 하는 것(狀其物置之於本倫, 別之於他類也)’이고, 질료인(The material cause)은 ‘사물 본래의 물질적 재료로써 형상인을 수용하고 있는 것(物之本來體質, 所以受模者也)’이다. 그리고 목적인(The final cause)은 ‘사물이 지향하고 소용되는 바를 정해 주는 것(定物之所向所用也)’이다. 형상인과 질료인은 본래 사물에 내재하는 것이니, 운동인과 목적인만 사물 외적인 것으로 천주가 사물의 원인이다.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적 기반에서 리치는 천주의 존재를 ‘만물의 원인(物之原)’이요 천지만물의 ‘원인 중의 최초원인(所以然之初所以然)’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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