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 속에서 ‘꽃’은 피어났다. 조선 시대 순교자의 피가 한반도에 신앙의 꽃을 피우듯, 한국전쟁 가운데 교우들이 틔우는 ‘성모 신심’과 ‘순교 신심’의 꽃봉오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꽃은 어렵고 힘들수록 더 강렬하고 아름답게 피어났다. ‘신앙의 꽃’이다.
가톨릭대사전은 “한국전쟁에 대한 교회의 대응과 관련해 또 하나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심운동 측면”이라며 “한국전쟁 과정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순교 신심과 성모 신심을 더욱 강화했고, 거기에 매달렸다”고 적고 있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본당 신부들은 직장을 사수하고 교우들과 생사를 함께한다’ 등의 교회수호활동과 교우들의 ‘신심운동’으로 전쟁에 맞섰다.
▧ 성모 신심은 용기와 희망이 되고
당시의 신심운동은 크게 ‘성모 신심’과 ‘순교 신심’으로 나뉘었는데, 어머니인 성모를 통해 전구함으로써 공산주의와의 전투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유지시키는 사회 심리적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뿌리 내린 한국교회의 성모신심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성모 신심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용기와 희망으로 작용했다.
성심의 으제니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쓴 ‘북한 포로기’에 보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끌려가 ‘죽음의 행진’을 걷는 외국인 선교사들에게도 성모신심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했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카다르 신부님은 코요스 신부님과 함께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곤 하였는데, ‘코요스 신부, 나하고 같이 로사리오 기도를 바칠까? 나는 아직 세 단의 묵주신공을 더 바쳐야 하는데, 신부는? 신부는 환희의 신비를 하고 있어? 나는 고통의 신비를 하고 있어.’ 이 불가사의하고 고독한 길에서 경건한 ‘성모송’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메아리는 무시무시하고 인적 없는 산을 수천 번이나 때리고 되돌아와 하늘로 올라갔다.”
‘파티마 성모’와 ‘루르드 성모’의 메시지도 한국 교우들에게는 전쟁에 맞설 힘으로 작용했다. 성모는 전쟁으로 인해 입은 심리적·육체적 상처를 치유하고 어루만져주는 ‘위로자’의 역할을 했다.
특히 공산주의의 패배와 멸망을 약속한 파티마 성모의 메시지는 교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됐는데, 전석재(이냐시오) 신부는 “파티마의 경고를 상기하자”며 “세계적이고 전 민족적이며 전 교회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희생과 기도의 거탄을 전선에 보내자”고 당부한 바 있다.
▧ 순교 신심은 우리에게 남은 숙제
가톨릭대사전은 순교 신심에 대해서도 “순교 신심은 전투 참여와 살인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 도와줌과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의 죄책감’을 보상하는 사회 심리적 기능을 주로 발휘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가톨릭신문의 전신인 ‘천주교회보’는 전쟁 발발 이후 첫 번째 발행한 신문(1950년 11월 10일자)에서 2면 2/3판을 털어 ‘양을 위해 희생된 거룩한 목자들- 순직의 주교 신부와 전재 교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전쟁 초기 납치 혹은 희생된 성직자들을 소개한 바 있다.
기사에는 교황대사관, 대구교구, 서울교구, 대전교구, 전주교구, 광주교구, 춘천교구의 순으로 성직자들의 피해상황이 나타나 있고 “피 뿌려 가르치신 그 정신 받들자”라는 부르짖음으로 ‘순교 신심’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그 생명을 버리느니라’하신 성경 말씀에 따라 이번 전란 발생 후 신자들이 미처 피란할 시간도 없이 적의 침입을 받아 적의 수중에 들자 자기 혼자 양떼를 버리고 떠나오시기가 차마 애처로워 끝까지 착한 목자의 임무를 다하시고자 교회의 직무를 사수하시다 마침내 그 생명을 희생으로 버리시게 되고 혹은 적의 흉악한 수중에 납치당해가시는 변을 당하사 그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신 주교 신부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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