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외지(外地)에서 공부를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녹음기능이 있는 작은 카세트 라디오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알아듣기 힘든 강의를 녹음해 다시 듣고 또 고향생각이 날 때 마음을 달래주는 「우리 노래」들을 듣는 데에 매우 요긴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다른 부분은 다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녹음을 해보면 그 재생소리가 들리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운 전파상에 가져가 보았으나 그곳에서도 그 이유를 발견해 내지 못했고, 다만「제조회사에 문의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만을 할 뿐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는 말이 서툰 상태였기에, 우선 그 일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고 또 수리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번 직접 고쳐보기로 했습니다. 어디 연결부분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라면 붙여만 주면 될 것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카세트를 분해하여 이곳저곳을 건드려본 결과는, 결국 조립도 제대로 다못할 정도로 그것을 완전히 망가뜨려버린 것,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한참 뒤에야 녹음재생이 안됐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녹음을 위해서는 마이크에 따로 작은 건전지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다 떨어졌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애꿎게 다른 곳을 마구 만지다가 기계를 아주 망가뜨려 버렸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티베리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직접 뵈었으면서도 그 부활을 실감 못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른 채, 자신들의 옛 삶과 방식인 고기잡이로 소일을 하고 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밤새 아무 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라」고 하십니다. 그 일은 제자들 이 자신들의 어부경험에 비추어 볼 때 별 승산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배 오른편에 칩니다. 그리고 기대와 상상을 초월한 153마리라는 많은 고기를 잡게 됩니다.
이 153이라는 숫자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이 숫자가「갈릴래아 호수에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류가 모두 153가지인 사실에 기인한다」고 했고, 아오스딩 성인은「153은 1에서 17까지를 다 더한 숫자로서 여기서 17은 10+7, 그리고 7이나 10은 완전하고 영원하고 좋은 숫자이며 특히 10은 십계명(율법)을 7은 성령칠은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결국, 153마리의 고기로 그물이 가득 찼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 교회 안에 모이게 될 것이라는「교회의 충만성」의 상징으로, 그리고 아울러「그럼에도 그물이 터지지 않았다」함은 그 교회의「하나 됨」「견고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카세트의 마이크에「따로 작은 건전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또 적어도 그것을 모르는 저에게 누군가가「건전지를 바꾸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더라면, 애꿎게 성한 카세트를 망가뜨려 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신앙을 고백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쓸데없이 귀한 생(生)을 낭비하고 그로 말미암아 멸망하는 일없이, 이 세상을 온전히 살아 갈 수 있도록 하시는「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는 것」은 오늘날까지 내게 익숙해 있던, 그래서 알게 모르게 부정적 타성에 젖어버린「나의 삶을 쇄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확실-불완전한 자기 경험이나 능력에 자만하고, 또 헛된 세속욕망으로 헛그물질을 하면 서서히 죽어가는「나의 옛 모습」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예수님께 겸손되이 순종하며 성실하고 맑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생(生)의 순간순간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될 것이며, 아울러 자연스레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기쁘게 그물을 치는「사람 낚는 어부」들이 될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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