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그리스도 탄생 2천주년과 그리스도교 제3천년기의 시작을 장엄하게 경축하는 대희년을 바라보며 여러분과 함께 마음과 정성을 모아 주님의 성령께 기도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2천년 성년을 직접 준비하는 영적 여정의 둘째 단계를 특별히 성령께 바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제직은 성령과 그분의 사명에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는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화와 성화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원천이며 그 근본입니다.
창조주이시며 성화주이신 성령
『임하소서 성령이여, 창조주여 임하소서, 고귀하온 은총으로, 모든 조물 돌보소서』
성서는 인간 역사가 시작될 때 성령께서『물 위를 휘들고』(창세 1,2) 계셨으며 구원 활동이 시작될 때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마태 1,20 참조)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를 향해 예수님의 지상 생활을 이끄셨습니다. 십자가의 비극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히브 9,14) 당신 자신을 바치셨고,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시어(로마 8,11 참조). 『권능을 지닌 하느님의 아들로 책봉』(로마 1,4)되셨습니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은 위로자이신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신자들의 마음속에 힘차게 살아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성령께서는 『새로운 복음화의 주역이십니다』(「제삼천년기」, 45항)
성령의 열매인 성찬례와 성품
『우리들의 위로자여, 천주 주신 선물이라, 모든 생명 근원이며, 타는 사랑 주시도다』
주님의 만찬 성목요일에, 우리사제들은 모든 신자 공동체와 더불어 성찬성사의 선물에 감사드리며 우리의 독특한 성소의 은총에 소명 의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날마다 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새로운 마음과 완전한 순응의 자세로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맡기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하느님 성령의 능력 없이 인간의 입술이 어지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하느님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하고 위대한 신앙의 신비를 교회는 끊임없이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갈라4,6).
사도 바오로의 말은 성령의 근본적인 은혜가 거룩하게 하는 은총(gratia gratum faciens)이라고 상기시켜 줍니다. 그 은혜를 통하여 우리는 향주덕(向主德: 믿음, 바람, 사랑)을 비롯 모든 주부덕(virtutes infusae, 注賦德)을 받아 성령의 인도 아래서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은혜들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인간을 거룩함과 완전함으로 이끌어 갑니다.
참으로 이 은혜들은 우리의 영적 자세에 놀랍도록 너무나 잘 어울려 그 마음가짐을 완전하게 하고 특별히 하느님의 활동에 마음을 열어줍니다.
사람에게 내리는 성령의 은혜
『우리 명오 비추시고, 우리 맘에 사랑 주사, 우리들의 질병 고통 즐겨 참게 하옵소서』
신앙인은 성령 칠은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만이 누리는 자유로써 아버지 하느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하느님을 닮도록,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생각하시고 사랑하시고 행동하시는 방식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리스도인이 세상 안에서 복되신 삼위일체의 가시적 표징이 되도록 만드십니다.
사제 생활에서 주시는 성령의 은총
『우리 원수 멀리 쫓아, 참된 평화 주옵시며, 당신 감도 순히 들어 재앙 면케 하옵소서』
성령은 세례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고 하느님 나라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지혜의 은혜를 주시어 사제들이 모든 것을 복음에 비추어 판단하게 하시며, 통찰의 은혜로써 더 깊은 통찰력을 기르게 하시며 확신을 가지고 구원을 선포하도록 하십니다. 사제는 용기의 은혜로 직무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을 얻고 복음 선포에 필요한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공경의 은혜를 주시어 사제가 하느님과 내밀한 친교관계를 회복하게 하십니다.
사제가 자기 삶의 역정에서 하느님 사랑의 징표를 깨닫게 되면, 하느님과 궁극적인 만남의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절실하고 열렬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성숙한 신앙의 징표입니다.
협조자 성령께서는 사제에게 성자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해주시고 깊은 동경으로써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해 주십니다.
또 사제에게 당신의 위격에 대해 밝혀 주심으로써 사제가 마음으로 또 역사 안에서 성령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이로써 사제는 모든 인간적인 말을 초월하는 하느님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며, 또한 인간의 죄와 결점을 이겨내는 은총의 힘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현존 앞에 엎드려
『성부 대전 영광이며, 부활하신 성자께와, 위로자신 성령에게 무궁 영광 있어지이다. 아멘.』
성목요일에 우리는 사제직의 탄생을 성찰하며 사제품을 받던 날 성당 바닥에 엎드려 있던 감동적인 순간을 떠올립니다.
하느님의 깊은 영성에 이르도록 이끌어주시는 성령의 활동에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다짐하며, 여러분의 봉사 직무에 하느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빌면서, 사도좌에서 진심으로 특별한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바티칸에서 교황 재위 20년 1998년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대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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