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실업난으로 많은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삶의 한켠에선 벌써 10여 년 전부터 실직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가 한 지역을 공동화할 만큼 몰아쳤다. 가정 파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아이들이다. 아비와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가슴은 메마른 황무지이다. 사랑의 단비가 아무리 내려도 피멍든 가슴의 골은 메우지 못한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가장의 실직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정을 격려하고자 특집 기획으로 르포장성 「하늘바라기」를 마련했다.
삶의 굴레였던 가정이 이젠 희망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있다.
단란한 가정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그 사랑의 참 맛을 알기에 가정에 대한 그림움이 몸살을 앓듯 순간순간 밀려온다. 전화 수화기 저편에서 눈물먹은 아빠의 목소리가 전해져 올 때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 아빠의 목소리를 좇아 며칠이고 거리를 헤맨다.
강원도 태백 장성의 「하늘바라기」집(책임봉사자=허명숙 수녀) 6명의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가 운영하는 「하늘바라기」집 아이들은 분명 고아가 아니다. 부모가 있고 형제 자매가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겐 자랑스럽게 내세울 엄마 아빠가 없다. 오히려 아빠는 이들에게 두려움이고, 엄마는 어린 가슴에 못을 박는 한 맺힌 단어이다. 한 노동자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외쳤지만 이 아이들에겐 「웃음꽃이 피는 가정만이 삶의 희망」이다.
「하늘 바라기」네 아이들은 날 때부터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었다. 단란한 가정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그 사랑의 참 맛을 알기에 가정에 대한 그리움이 몸살을 앓듯 순간순간 밀려온다. 전화 수화기 저편에서 눈 물먹은 아빠의 목소리의 떨림이 전해져 올 때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 아빠의 목소리를 좇아 며칠이고 거리를 헤맨다.
해발 8백55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을 넘어야 갈 수 있는 땅 태백 장성. 한 때 남부럽지 않게 번성한 도시였지만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한 오지가 되어버린 잊혀진 땅이다.
온 국민이 법석을 떨고 있는 lMF실업의 한파를 이곳 주민들은 10년 전부터 맞고 있다.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는 태백지역 전체를 공동화(空洞化)하는 엄청난 태풍이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직장을 잃고 가정은 파괴됐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엄마들은 집을 떠났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가장들은 자괴감을 잊기 위해 술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늘바라기」네 지수(아네스ㆍ가명)와 숙희(마리아ㆍ가명) 남매는 아버지의 술값을 벌기 위해 고한역에서 앵벌이 노릇을 해야만 했다.
술값을 구해오지 못하면 알콜중독자가 되어버린 아비가 심하게 매질을 해 학교도 가지 못하고 구걸을 해야만 했다.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는 날이면 아빠의 매질이 무서워 역이나 산에서 노숙을 했다.
『길에서 자며 제대로 먹지 못했어요. 매일 매 맞고 고생하다 경찰아저씨들의 손에 이끌려 하늘바라기 집으로 왔어요』
앵벌이가 돼 또래보다 3년이나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수, 숙희남매. 『학교에 다니는 것이 너무나 좋다』며 하늘바라기에서 적응해 가고 있는 이들 남매는 어떻게 알고 하루는 아버지가 이들을 찾아오자 창문을 넘어 도망친 적도 있다. 『언제 아버지가 불쑥 나타날까봐 지금도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는 어린 남매의 거침없는 말이 깨어진 가정의 비참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게 해 준다.
하늘바라기의 막내 안나와 프란치스코(초등3)도 형편은 비슷하다.
안나의 경우 직장을 잃고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는 정신착란을 일으킬 만큼 심한 알콜 중독자이다. 프란치스코의 아버지 역시 알콜 중독자여서 7살 되던 해인 95년부터 하늘바라기에서 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윤성(나타나엘ㆍ가명)이의 경우는 특별하다. 단란한 가정에서 자란 윤성이는 94년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오니 아버지마저 떠나 혼자가 돼버렸다.
친척들마저 양육을 포기해 하늘바라기 식구가 된 윤성이는 한 때 『버림받았다』는 충격 때문에 반항적이 됐지만 수녀들의 사랑으로 차츰 안정을 찾고 있다.
하늘바라기의 맏이인 미영(가명ㆍ가타리나)이는 간호사의 꿈을 간직한 고등학교 1학년이다. 미영이 역시 다른 하늘바라기 식구들과 비슷한 가정사를 갖고 있지만 자기 개방과 성품이 밝아 맏이로서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다.
아이들이 「하늘바라기」내에 들어왔다 해서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하늘바라기에선 대학을 마치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살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의 많은 청소년들이 직장을 구해 도시로 떠났다가 IMF로 회사가 부도나 직장을 잃고 대책 없이 다시 고향을 찾아와 무의미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끝없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직장을 구해 도시로 떠난 형과 언니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아이들이 모든 걸 잃고 되돌아와 빈둥빈둥 노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늘바라기네 엄마들인 허명숙(바울라) 수녀와 백미정(안젤라) 수녀는 IMF 때문에 아이들이 자칫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릴까 무엇보다 걱정이 크다.
『아이들이 어린 것 같지만 일찍 철이 나 세상 사물을 읽는 눈이 밝아요. 아이들이 이곳에서마저 희망을 잃게 되면 떠나고 말 것입니다. 저희들의 소망은 이 곳이 아이들의 마지막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늘바라기」 아이들은 버려진 아이라고 손가락질 받기보다 부러움의 대상이 될 때도 있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의 표현대로 한 집 걸러 한 집이 결손 가정이고 아비가 알콜중독자로 고층을 겪다 보니 아이들과 주민들의 눈엔 「하늘바라기」가 해방구로 느껴질 때가 있단다.
그래서 가끔 이곳을 찾는 주민들이 제법 구색을 갖춘 집안을 둘러보고 『집안을 이렇게 좋게 꾸며놓고 살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입바른 소리로 상처를 주고 간다. 그럴 때마다 수녀들은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해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의 상처를 채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버림받은 아이들이 사는 집이라고 해서 깨끗하고, TV와 냉장고가 있다 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수녀들은 『아이들에게 아무리 많은 사랑을 줘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가정에 대한 정』이라며 『온 가족이 함께 사는 가정이야말로 가장 큰 부자』라고 강조했다.
한 때 조직폭력배에 몸담고 있다가 장성본당 조규남 신부와 수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직업 훈련원에서 새로운 삶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아이를 통해 삶에 대한 진한 희망을 느끼는 하늘바라기 식구들.
비록 피멍든 가슴만이 남아 있는 어린아이들이지만 다시 태어나 새롭게 시작하는「새날새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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