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두산 성지 주임 변우찬 신부(가운데)와 한국교회사연구소 관계자들이 한국 천주교회 유물전 개막을 축하하며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새로운 유물전 개막을 위해 성지는 19일 성지 주임 변우찬 신부의 주례로 개막미사와 축복식을 봉헌했다. 축복식에는 교회사연구소 사제단과 내빈 등이 참석했다.
이번 전시된 70여 점의 전시품 가운데는 눈에 띄는 유물들이 많다. 조선 후기 문인서화가인 강세황(1713~1791)의 중국 기행첩인 ‘수역은파첩’, 조선 신자들이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보낸 ‘1835년 정월 19일자 편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학자였던 ‘정약용(요한·1762∼1836)의 편지’ 등이 전시됐다.
변우찬 신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전시회 주제를 택한 것에 대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보는 것처럼 신뢰하는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라며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느끼고 깨닫기를 바라는 교회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수역은파첩
1784년 동지사행을 배경으로 제작된 중국기행첩 중 하나인 수역은파첩. 청나라 건륭제가 강희제의 운에 따라 직접 지은 시와 건륭제의 천수연에 즈음한 당시 정황을 적어 화첩으로 엮은 것이다.
이 가운데 천주당을 방문한 내용은 22면과 23면에 걸쳐 쓰여 있으며, 일행은 1784년 12월 구경했던 서선무문 내에 있는 북경의 남천주당에 방문한 내용을 적었다. 글에는 강세황을 비롯한 조선사신단들이 서양의 건축과 회화를 본 후의 호기심과 놀라움이 표현돼 있으며, 당시 중국여행을 통해 이뤄진 서양 선교사와의 간접적 교류와 서양문물의 유입을 짐작게 하는 귀한 자료다.
“천주당은 연경의 서쪽 선무문 안에 있는데 우리들은 갑진년 12월 25일 구경했다. 대마루와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했다. 마침내 누각 뒤에서 돌계단 20여 개를 밟고 위층으로 올라가 온 성의 누대와 연수를 내려다보니 황홀하여 선계, 광한궁(중국 신화에서 달에 산다는 여신 항아(姮娥)가 사는 가상의 궁전)에 들어온 듯 했다.”
■ 조선 신자들이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에게 보낸 편지 (1835년 정월 19일자)
초대 조선교구장인 브뤼기에르(1792~1835) 주교의 조선입국을 방해하던 중국 남경교구장 피레스 페레이라 주교와 이미 조선에 입국해 활동하던 중국인 유 파치피코 신부의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서양인 선교사의 조선 입국을 주저하던 조선 신자들이 초대교구장의 입국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편지는 유진길(아우구스티노)과 조신철(가를로), 김 프란치스코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보낸 한문 서한.
“주(문모) 신부님이 처형된 후 우리나라에는 30여 년 동안이나 목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중략) 저희가 모두 함께 천국에 올라갈 수 있도록 구원의 손을 뻗쳐주실 것을 의심치 않겠습니다. 그러면 이 얼마나 큰 행복이겠나이까. 이후 다른 서양인 선교사들이 조선에 오기를 원하시면, 다 같이 성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모셔 들이겠습니다. 저희들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지키겠습니다.”
■ 정약용의 편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학자였던 정약용(요한·1762∼1836)의 편지.
“산에서 생활하는 모든 일은 만족스럽습니다. 오직 산허리의 한 가닥 작은 길이 속세의 나그네를 끌어들여 가증스럽습니다. 보내신 시는 아주 좋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 조선 대목구 제4대 교구장 성 베르뇌 주교가 정 빈첸시오에게 준 평양 회장 임명장
■ 조선 대목구 제7대 교구장 블랑(Blanc, 白圭三, 1844~1890) 주교의 1885년 사목교서